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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태산 칼럼] 경영힌트 관찰 4  “소비자 설문조사, 이래서 쓸모없다”

2021-01-29     주태산 이코노믹리뷰 주필
(사진 = 주태산 이코노믹리뷰 주필)

▶ 왜 CEO가 편한 시장조사를 놔두고, 귀찮고 힘든 현장 관찰에 직접 나서는가?

우선 독일 경영 철학자 라인하르트 K. 슈프렝어(Reinhard K. Sprenger)의 말부터 들어보자.

그는 다양한 원인을 들어 시장 조사의 부정확성을 지적한다.

당신이 설문조사에 응한다고 상상해보자. 조사원은 당신 앞에 앉아 있거나 수화기 너머에서 설문지를 펼쳐 들고 있다. 한눈에 봐도 연구 조사처럼 보이는 상황이 조성된다.

당신은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서 조사원이 ‘쓸모있는’ 대답을 기대할 것이며, 당신의 답변은 누군가에 의해 냉정하게 평가될 것이란 점을 깨닫는다.

그래서 당신은 질문을 들을 때마다 심사숙고해서 유용할 만한 답변을 해주고, 사회적으로 응당 그래야 하는 무난한 대답만 하게 된다. 답변이 당신의 ‘사실’과 점차 동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설문 내용 자체도 대상자들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간다. 조사 환경도 변수가 된다. 점심 식사 이후 조사하면 대상자들이 훨씬 호의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조사 대상자에게 현금이나 커피 쿠폰 등 대가가 선행되어도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제품을 좋아하게 된다.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느낌과 인상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결과이다. 설문 조사처럼 고립되고 왜곡될 수 있는 실험 환경에서는 그와 동일한 결과를 얻기는 힘들다.

더욱이 좋아하는 것과 구매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조사에서 소비자들이 무엇을 왜 좋아하는지 알게 되더라도 과연 구매하게 될지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슈프렝어는 저서 <궁극의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에서 신경생물학을 동원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인간의 ‘좋아함(liking)’의 인식은 젊은 뇌 영역에서 관여한다. ‘좋아함’이 강화되면 ‘원함(wanting)’이 된다. 그런데, ‘행동(action)’은 오래된 뇌 영역에서 특정 전달물질이 생성될 때만 유발된다. 언제, 어떤 경우에 특정 전달물질이 생성되는지는 알 지 못한다.

인간의 뇌에서 ‘좋아함’과 ‘원함’은 직선으로 연결돼 있지만 ‘행동’ 결정은 독립적으로 작동된다는 얘기다.
구글의 혁신 전문가 알베르토 사보이아(Alberto Savoia)는 다른 각도에서 설문 조사가 갖는 한계를 지적한다.

첫째, 소통 문제에 부딪힌다.

당신이 신제품이나 새 서비스에 대해 설문 조사한다고 치자. 당신이 아무리 새 제품 혹은 서비스의 용도를 설명해줘도 대상자들이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이미지는 완전히 다른 것일 수 있다. 실물을 체험해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경험, 신념, 선호, 편견, 세계관 등의 맥락 내에서 추상적으로 해석하게 마련이다.

만약 차량 공유 기업 ‘우버’가 창업 직전 설문 조사를 했다면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 어릴 적부터 ‘모르는 사람 차에 타지 말라’는 가정 교육을 받았을 대부분 응답자들이 “나는 이용하지 않겠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둘째, 설문 대상자들은 당신 사업에 ‘적극적 투자(Skin in the Game)’가 없다.

결과에 걸려 있는 분명한 이해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이익이나 손해 볼 일이 없으므로 별생각없이, 무책임하게 의견이나 조언을 내놓는다.

셋째,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다.

조사 결과로 수집된 정보를 해석하는 단계에서 당신은 객관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기존의 신념이나 이론과 일치하는 증거를 중시하고 그와 상반되는 증거는 회피하고 무시하려는 경향, 확증 편향 때문이다.

인지수학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i)는 “특정한 추측이나 해석을 채택하고 나면, 우리는 그 가설의 가능성을 극도로 부풀리기 때문에 상황을 달리 보기란 매우 어렵게 된다.”

사보이아는 이러한 한계 때문에 없는 시장을 있다고 암시(긍정 오류)하거나, 있는 시장을 없다고 암시(부정 오류)하는 잘못된 결론들이 양산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시장 조사가 시장의 현실을 반영하거나, 시장과 일치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것은 고장 난 시계가 하루에 두 번은 맞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꼬집는다.

한편 스티브 잡스도 시장조사를 불신했다. 1998년 5월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에서 잡스는 “대부분 사람들은 제품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른다.“며 시장조사 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1863~1947년)는 시장조사 무용론자였던 모양이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만일 고객에게 마차의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겠느냐고 물었다면 이런 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더 빠른 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