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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태산 칼럼] 경영힌트 관찰 5 “사상 최대 규모 ‘인도 화장실 프로젝트’가 겪은 시행착오”

2021-04-13     주태산 이코노믹리뷰 주필 /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
(사진 = 주태산 이코노믹리뷰 주필 /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

국가 정책에도 관찰이 필요하다. 정책 수립하기 전 현장을 관찰하고, 집행 과정은 물론 완료 이후에도 현장 상황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에서는 대상 지역의 사람과 문화, 환경 등 모든 맥락을 살펴야 한다. 어떤 프로젝트는 시설 자체 보다 이용자들의 인식이나 행동 개선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다.


2014년 3월 인도 북부 시골 마을에서 10대 소녀 2명이 강간 살해됐다. 현지 경찰은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들을 풀어줬고, 피해자들에게 성폭행 흔적이 없었다며 사건을 서둘러 덮었다. 이 사건은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방 경찰의 사건 은폐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행적이 세상을 더 놀라게 했다. 사촌간인 두 소녀는 사건 당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것은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 가디언지는 현지 경찰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지역 강간 사건의 95%가 야간에 배변을 위해 숲을 찾아나선 여성들을 노린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2014년 기준 13억 인도 국민의 절반인 6억2000만명이 화장실 없는 집에 살고 있었다. 가구수로는 전체 가구의 60% 이상이다. 이들은 마땅한 공중 화장실도 없는 상태에서 용변을 동네 후미진 골목이나 공터, 풀숲, 하천, 바닷가에서 해결해야 했다. 이 때문에 여성에게 노상 배변은 일상적인 ‘위험’이었다. 용변을 보다가 뱀이나 독이 든 벌레에게 물리기도 하고 성폭력에 노출되는 일이 빈번했다.
 
노상 배변은 음식물과 물을 오염시켜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인도에서 사망자 10명 가운데 1명은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죽는다. 2013년의 경우 설사 환자는 1억 9900만 명, 설사로 인한 어린이 사망자는 30만 명에 달했다.
 
두 소녀 사건은 인도 정부가 노상 배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계기가 됐다. 그해 10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클린 인디아(Clean India)’ 정책을 발표했다. ‘노상 배변 없는 나라(Open Defecation Free)’라는 구호를 내건 대대적인 화장실 보급 사업이었다.
 
모디 총리는 1조 루피(약 15조 78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5년 간 인도 전역에 1억 110만 개의 화장실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인도는 물론 전 세계 여성계가 인도 여성 인권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화장실 건설 프로젝트는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의 <번영의 역설>에 의하면 2015년 중반, 개인 화장실 신축은 지지부진했다. 공중 화장실의 경우 1년새 1000만 개나 지어졌지만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다.
 
이에 인도 정부는 부랴부랴 화장실 이용확대 방안을 내놓았다. 지역별로 공무원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순찰을 돌면서 신축된 공중 화장실이나 개인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고 노상 배변을 하거나, 하려는 사람들이 적발되면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었다.
 
어떤 마을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호루라기를 지급하고 호젓한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보이면 쫓아가서 호루라기를 불라고 교육시켰다. 정부 차원에서는 공중 화장실 이용률이 높은 마을에 상금 등의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정부 대책들이 별 효과가 없었다. 현장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은 탓이었다. 먼저, 가부장적인 지방 가정에서는 개인 화장실, 즉 집 안에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에 거부감이 심했다. 그들은 신성한 기도실과 음식을 만드는 부엌이 있는 집 안에 불결한 화장실을 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집 안에 화장실을 설치하더라도 변기 청소는 ‘불가촉 천민’ 달리트(Dalit) 계급에게 시켜야 할텐데 대부분 가장들은 달리트 계층이 집안에 들락거리는 것을 꺼렸다.
공중 화장실 이용률이 저조한 것은 공중 화장실 역시 불결했기 때문이다. 날림 공사로 오수 처리장과 연결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분뇨차가 제때 오지도 않았다. 물 부족 지역이 많아 화장실 물 청소가 이뤄지지 않아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었다.
 
통합 관리 시스템이 필요했지만 미비했고, 시설의 유지 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도 최하위 계층 달리트에 속한 불가촉천민들은 공중화장실 이용이 사실상 금지되고 있었다.
한편 모디 총리는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2019년 10월 2일 ‘클린 인디아’ 프로젝트 5년을 결산했다. 그는 1억1000만개의 화장실을 6억명 이상의 인도인에게 보급했다고 밝혔다. 이날은 “위생 시설은 신성하게 여겨야 하며 정치적인 자유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마하트마 간디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사진 = 2017년 개봉된 인도 영화 '화장실: 어떤 사랑 이야기(Toilet:A Love Story)' 의 포스터. 신랑 집에 화장실에 없다는 사실에 놀란 신부가 집 안에 화장실을 지어주기 전까지는 함께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이 영화는 '클린 인디아' 캠페인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