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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효율성’에서 `안정성’으로… 변화하는 반도체 공급망에 한국의 대응 방안은?

- 무역협회, 주요국 반도체 산업정책과 공급망 변화 분석 - 韓 `초격차’ 유지하면서 포트폴리오 다변화 모색해야

2021-09-03     이민규 전문기자

미중 무역 갈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전 세계 산업과 소재 시장에서 공급망(supply chain)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반도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자율 지능차, 5G, 핀테크 등 다른 첨단 산업에서도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품목인 만큼 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좌우하기도 한다.

아울러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최근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공급 지연 사태가 벌어지면서 각국 정부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주요국의 반도체 산업정책과 공급망 변화 전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상황을 짚어보고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가 갈 길을 모색했다.

무역협회는 미국 등 주요국이 자국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성과 공급망 교란으로부터의 회복력을 중시하는 반도체 산업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공정별, 지역별로 분업화된 기존 반도체 공급망이 구조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공급 지연 및 수요 예측 실패와 자연재해, 화재 등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을 겪으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반도체 공급망의 `효율성’보다 `안정성과 회복력’에 중점을 둔 산업정책과 경영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반도체 (사진 = 픽사베이)

▶ 공정별, 지역별 분업화 뚜렷…공급망 교란 원인 되기도

또한 현재 반도체 산업 공급망의 특징을 공정별 그리고 지역별 전문화로 분석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은 크게 설계, 제조, 후공정의 3단계로 나뉘며 그 외에 EDA와 IP, 제조 장비, 소재 등 여러 보조 공정이 존재한다.

(자료 =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반도체 산업은 지역별로 해당 공정에 대한 전문 및 분업화가 되어 있다. 각자 공급망에서 특화된 역할이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은 전체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52.7%의 비중을 차지한다. 예외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제조 및 후공정 단계에서는 대만과 한국, 중국 등 대체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공정이 지역별로 분화된 것은 각 공정별로 요구되는 기술과 자본 집약도가 차이 나는 상황에서 미국은 기술,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에 비교 우위를 갖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자료 =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

그리고 이와 같은 반도체 산업의 특징은 최근 벌어진 반도체 공급망 교란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고도화된 공정별·지역별 분업화로 인해 의존도가 높은 소수 기업 및 지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공급망 전체의 기능이 정지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이 같은 공급망 취약점의 문제가 앞으로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각국 경쟁 심화… 韓 `초격차’ 유지하면서 포트폴리오 다변화 모색해야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반도체 산업은 여러 관점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일단 국제 분업 체계에서 국내 분업 체계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이 비교 우위 기반의 국가 간 분업 체계에서 국가별 공급망 내재화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 면에서 강점을 가진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기반을 마련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첨단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기존에는 비교 우위에 따라 의도적으로 경쟁력 강화를 소홀히 했던 분야가 이제는 공급망 내 취약점으로 간주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반도체 `디커플링’ 움직임도 격화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 때 시작된 이 같은 움직임은 바이든 정부 이후에도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한국 기업들에 대해서는 “진영 논리가 격화되는 상황에서 경제 논리에 입각한 방식으로 실리를 챙길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초미세 공정 반도체를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7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 반도체는 AI,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 수요 산업의 성장에 따라 그 중요성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반도체 산업에서도 관련 경쟁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2020년 기준으로 파운드리 분야에서 56% 비중을 차지한 대만 TSMC 역시 초미세 공정 반도체 양산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자료 =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

이 같은 현상은 기술 및 자본의 진입 장벽이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결과를 낳으면서 후발 기업들이 선도 기업들을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첨단 반도체 공정을 선도하는 국가들은 자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보존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 한편 후발 국가들을 시장 잠재력이 높은 신산업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국내의 선도 기업이 갖는 초미세 공정 `초격차’를 유지하는 동시에 차세대 전력 반도체 등 신산업 육성을 통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막 오른 3차 반도체 전쟁… 반도체 강국 입지 공고히 해야

끝으로 최근 반도체 산업의 경쟁을 `3차 반도체 전쟁’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으로의 입지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980년대 미일 반도체 분쟁,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반도체 치킨게임 이후 반도체 산업은 분업화와 지역화의 특징을 보이며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해 왔으나, 이제부터 과거보다 더욱 치열한 3차 반도체 전쟁이 전망된다.

또한 “과거 국가 간, 기업 간 혹독한 경쟁을 거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앞으로 반도체 전쟁에서 경쟁 우위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고, `반도체 강국’으로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나가려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무역협회 신규섭 연구원은 “주요국은 반도체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핵심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수차례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앞으로의 반도체 전쟁에서도 경쟁 우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