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 이순신은 시인(詩人)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의아해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이순신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한산도가(閑山島歌)를 모르는 분은 거의 없다. 이순신은 활을 쏘는 무인이었지만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천부적 문인이었다. 일찍이 국문학자 조윤제는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에서 “이순신은 조선 중기 시조 문학의 대표적 인물”이라 했고, 시조 시인 이병기는 「충무공의 문학」에서, “이순신의 시와 서간문 그리고 난중일기는 그 간곡한 충정이 주옥같이 그려져 있어 글재주나 부리는 여간한 문필가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라고 했다. 이순신의 한시가 청구영언, 해동가요, 고금가곡, 가곡원류 등에 실려있는 이유이다.

이순신의 인문학엔 국보 76호인 「난중일기(亂中日記)」, 「임진장초(壬辰狀草)」 「서간첩(書簡帖)」 등이 있다. 장장 7년의 임진왜란을 대하소설처럼 써 내려간 난중일기였다. 45전 무패 전승의 비밀을 마치 전쟁영화 시나리오같이 엮어냈던 임진장초였다. 한산도에서 전해오는 편지에는 고독한 장군의 인간적 번민이 가득했다. 그리고 부서진 뱃전에서 고뇌했던 독백은 주옥같은 한시로 거듭났다. 이순신이 지은 시(詩)가 20여 수 넘게 전해진다. 하지만 거미줄 엉킨 창고에서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는 또 다른 작품이 은근히 기대된다.

□ 내 마음을 홀리는 애송시(愛誦詩) 두 편

북거동근고 남래공사생(北去同勤苦 南來共死生)

일배금야월 명일별리정(一杯今夜月 明日別離情)

“북쪽에 갔을 때도 고락을 같이했고, 남쪽에 왔을 때도 생사를 함께 했네

오늘 밤 달빛 아래 한잔 술 나누면, 내일은 정만 남기고 헤어져 가겠구려.”

증별선수사거이(贈別宣水使居怡)라는 시(詩)다. 함경도 녹둔도 시절부터 전우애를 다져온 충청수사 선거이(宣居怡)가 황해병사로 전출되는 섭섭함이 절절히 녹아있다. 1595년 9월 14일의 난중일기다. “우수사와 경상우수사가 함께 와서 이별주를 같이 나누고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선수사(선거이)와 이별할 때 짧은 시 한 수를 비단에 적어주었다.”

수국추광모(水國秋光暮) 경한안진고(驚寒雁陣高)

우심전전야(憂心輾轉夜) 잔월조궁도(殘月照弓刀)

“통제영 가을빛은 저물어 가고, 찬바람 기러기 떼 깜짝 놀라 높이 나네.

가슴엔 근심 가득 잠 못 이뤄 뒤척이고, 새벽달 외로이 활과 칼을 비추네.”

이 시(詩)는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이다. 수국(水國)이라 일컬은 한산도 통제영, 우국충정에 잠 못 이루는 장수의 고뇌가 동양화처럼 펼쳐진다. 1595년 10월 20일의 난중일기다. “이날 밤바람은 몹시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은 대낮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리니 온갖 생각이 가슴을 치밀었다.”

□ 경영도 사랑도 상상력이다

경영자들 사이에 인간의 감성을 지향하는 인문학 경영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인문학적 감성과 상상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만족시키는 혁신경영을 성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21세기 인문학 시대에 16세기 이순신의 인문학인가?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공연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는 데 그 답이 있다. 16세기 고전문학이 지금도 많이 읽히는 도서라면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먼지 쌓인 창고에 묻혀있을 이유가 없다. 셰익스피어(1564~1616)도 세르반테스(1547~1616)도 이순신(1545~1598)도 동(同)시대를 살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인문학에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감성과 상상력, 창조적 아이디어와 경영마인드가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인문학엔 백전백승의 전과를 더욱 빛나게 하는 가치창조와 경영전략이 있었다. 일본군과 싸우면서 거북선을 창제하고 총통을 개발했던 창조경영이다. 둔전을 경작하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군복을 마름질하고 판옥선을 건조했던 자립경영이다. 이순신의 인문학엔 무엇보다 사랑이 넘쳐났다. 굶어 죽는 백성을 위해 군량미를 나눠주던 이순신, 육지로 도망간 왜적들이 백성을 해칠까 봐 돌아갈 배를 남겨두는 이순신이었다. 연민과 온정이 넘쳤던 이순신의 인문학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쓰다듬는 힐링이었다.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랑이었다. 사랑은 무한의 상상력이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 그러나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따뜻한 상상을 하는 사람, 그가 바로 휴머니스트 이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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