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태산 이코노믹리뷰 주필/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
주태산 이코노믹리뷰 주필/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

신제품의 95%는 실패한다. 버티는 기간이 다를 뿐, 결국 시장에서 사라진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前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그 원인을 “비효율적인 시장 세분화 메커니즘(market segmentation mechanism)을 사용한 탓”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신제품이 실패했을 경우에 적잖은 회사에서는 문책 인사가 이어진다. CEO는 재발 방지를 위한다며 징계의 칼날을 휘두른다. 읍참마속의 심정이라며 최측근까지 날리는 사장들도 있다. 하지만 신제품 실패도 CEO의 잘못이다.

옛 지상전을 다룬 영화에 꼭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군 최고사령관이 현장 점검을 하는 모습이다. 그가 백마를 타고 진영을 한 바퀴 도는 것은 폼 잡으려는 게 아니다. 언제든 ‘돌격 앞으로!’를 외칠 만한 상황인지, 공격 계획을 긴급 변경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는 지형과 날씨는 기본이고, 병사들의 눈빛과 옷차림, 말과 마차 바퀴 상태까지 살핀다. 공격 명령의 취소 권한도 자신에게 있는 만큼 최종 점검을 직접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신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CEO가 신제품 출시에 앞서 고객들에게 시제품(프로토타입)을 체험하게 하면서 그 현장을 자신이 나서 관찰한다면 어떠할까? 아마도 마케팅 보고서가 현실과는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마지막 ‘관찰 단계’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 사례를 보자. 맥도날드 밀크셰이크는 맛에 비해 큰 인기가 없었다. 경영진은 밀크셰이크를 대박 상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실무팀은 밀크셰이크를 디저트 상품군으로 분류하여 KFC 비스킷, 버거킹 아이스크림을 경쟁 상대로 잡았다. 상식적이고 당연한 분석이었다. 분석 결과 밀크셰이크 잠재 고객군(would-be customers)은  8~13세의 어린이였다.

모든 소비자가 다 같은 기호를 가지지는 않는다 (사진 = 픽사베이)
모든 소비자가 다 같은 기호를 가지지는 않는다 (사진 = 픽사베이)

▶ 느림의 미학? 다양화를 시도하다

대책은 다양화였다. 잠재 고객군의 ‘솔직한’ 의견까지 반영하여 진하고, 묽고, 부드럽고, 과일 향 나고, 초콜릿 맛이 나거나, 덩어리가 씹히는 등의 다양한 밀크셰이크를 제조했다.

이제 전국 점포에 내놓기만 하면 대박이 날 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아무런 매출 변화가 없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던 맥도날드 경영진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에게 의뢰했다. 크리스텐슨 교수팀은 18시간 만에 원인과 대책을 파악했다. 비법은? 역시 관찰이었다.

교수팀은 첫날 아침부터 맥도날드 매장에 앉아 밀크셰이크 고객들을 관찰했다. (본 관찰 시리즈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듯이 해답은 비구매자가 아닌 구매자의 행태에서 발견될 수 있다.) 주로 구매자는 누구이며, 언제, 왜, 누구와 함께 밀크셰이크를 사러 왔는지 조사했다.

첫날 조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밀크셰이크 하루 판매량의 40% 이상이 오전 8시 30분 이전에 팔렸다. 고객은 출근하는 성인 남성이었다. 

그들은 승용차를 몰고 와서 밀크셰이크만 단품으로 구입하고는 곧바로 떠났다. 모두가 출근길이었다.

둘째 날 아침, 매장 밖에서 밀크셰이크 구매자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왜 출근길에 밀크셰이크를 샀는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를 밀크셰이크의 역할(job)을 확인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밀크셰이크는 출근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주고 있었다. 밀크셰이크는 먹는 데 평균 23분 걸리지만, 빨대를 이용하면 더 오래 먹을 수도 있었다.

먹은 후에도 2시간여 포만감을 유지시켜줘 아침 대용으로도 충분했다. 운전할 때 비어 있는 한 손의 허전함을 채우기에도, 졸음운전을 예방하는 데도 유용했다. 대용품인 도넛이나 바나나는 금세 먹어버리게 되고, 포만감도 채 1시간을 넘기지 못하며, 손과 운전대를 더럽힐 수 있어 외면됐다. 베이글은 크림치즈를 발라 먹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핸들을 놓아야 했다.

밀크셰이크 구매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매장의 긴 줄이었다. 햄버거 등 다른 메뉴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으면 귀찮아서 그냥 돌아갔다는 것이다.

크리스텐슨 교수팀은 이런 대책을 제시했다. 아침에 판매하는 밀크셰이크의 경우 먹는 데 시간이 최대한 많이 걸리도록 걸쭉하게 만든다. 입이 심심할 수 있으니 과일을 넣는다. 고객이 출근길에 들를 가능성이 높은 주유소 등에 밀크셰이크 자판기를 설치한다. 맥도날드 매장에서는 밀크셰이크를 따로 판매하는 별도 코너를 만든다. ‘드라이브인(drive-in)’ 등의 시스템을 적극 활용한다.

결과는 놀라웠다. 밀크셰이크의 매출이 7배나 올랐다. 알고 보니 밀크셰이크의 주 고객군은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었다. 밀크셰이크의 경쟁자도 KFC 비스킷, 버거킹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바나나, 도넛, 베이글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관찰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저작권자 © K글로벌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