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IT만큼이나 ‘K-넘버원’을 외치는 분야가 있다. 지난 십여 년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며 화장품 시장의 강대국이라 불리는 프랑스, 일본과 어깨를 견주게 된 K-뷰티. 한류의 영향은 물론이고 정부 차원에서의 집중 지원, ODM 업체의 발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어우러지면서 K-뷰티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K-뷰티의 수출’이라는 공통 목표를 가지고 중소기업 간의 수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설립한 사단법인 한국 화장품 중소기업 수출협회 회장이자 2006년 설립한 코스메랩의 박진영 대표는 대한민국 뷰티 브랜드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지켜본 산증인과 다름없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일본 화장품 회사에 입사해 선진국의 앞선 기술과 노하우를 경험한 뒤 한국에 돌아온 그는 1세대 화장품 종합 쇼핑몰이었던 체리아닷컴을 거쳐 2006년 체리아닷컴이 현재의 SK 11번가에 합병되기 전 창업을 선택했다.

초기에는 일본 뷰티 브랜드의 ODM 대행 역할을 시장의 흐름을 파악한 뒤 2012년 일본 도쿄에 화장품 복합 쇼핑몰 ‘스킨가든’ 매장 오픈을 시작으로 자사 뷰티 브랜드 G9SKIN(지나인스킨), berrisom(베리썸)을 만들어 국내뿐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 등에 진출해 K-뷰티를 알리고 있다. 자사 브랜드를 키우는 일에 그치지 않고, 한국 화장품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를 만나 K-뷰티의 현주소와 미래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진영 한국 화장품 중소기업 수출협회 회장 / 코스메랩 대표이사

 

지난 10년간 급속도로 발전해 온 K-뷰티, 양적·질적 성장을 이루다

Q 작년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화장품이 75억 6천 9백만 불을 달성하면서 15.7% 신장을 했고, 올해에도 순항 중이다. 금년도 수출 전망은 어떠한가.

2019년을 제외하고는 K-뷰티는 매년 2자리 성장률을 기록 중이며, 올해도 10% 이상의 성장이 기대된다. 2020년 전체 수출액의 50%에 달하는 38억 달러를 기록한 중국 시장 수출액도 금년도 들어서 더 신장할 것으로 본다. 특히 올해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그동안 사드 배치로 인해 한국 제품의 철수와 유통에서의 차별적 대우가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1년 1분기 화장품 수출액은 22.4억 달러로 기록했으며, 올해 85억 달러 이상의 수출액을 기대해 본다.

Q 현재 국내 화장품 제조 및 유통업체 숫자가 어느 정도이고, 언제 설립이 많이 되었나.

숫자로 살펴보자면 현재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는 4000개, 책임판매업체는 2만 개를 넘는다. 이름 그대로 제조사는 화장품을 개발, 생산하는 곳이고, 책임판매업체는 화장품을 유통, 판매하는 곳이다. 2014년 통계를 보면 제조업체는 1276개, 책임판매업체는 4853개였다. 2020년 기준 제조업체 3983개, 책임판매업체가 19,464개가 등록됐는데, 6~7년 사이에 무려 3~4배 늘었다.

“우리보다 화장품 산업이 발달한 프랑스에 실제로 80여 개의 화장품 업체가 있는데, 그에 비하면 K-뷰티는 포화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업체까지 따지면 아마 제조업체는 7000개, 책임판매업체는 2만4000개, 제품만 10만 개 정도로 추산합니다.”

박진영 대표는 큰 자본과 조직이 없어도 연구 개발부터 생산까지 대행하는 ODM 기반의 생태계 강점을 통해 양질의 제품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는 배경을 이야기한다. 화장품 ODM란, 콜마, 코스맥스 등 제조사가 화장품 기획 및 개발에서 완제품의 생산과 품질 관리까지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Q K-뷰티가 성장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2018년 기준 세계 시장의 화장품 산업의 규모는 4,807억 달러, 국내 시장은 12억 달러로 8위, 수출액은 62억 달러로 세계 4위를 기록하며 성장 및 기여도가 높은 효자 산업으로 꼽혔다. 세계 화장품 시장이 연간 4% 이상 성장하는 가운데, 국내 화장품의 수출은 연평균 35.2%가 증가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것. 2014년부터 흑자 전환한 이후 2018년 흑자 규모가 46억 불로 확대됐으니 말이다.

“초기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콘텐츠와 문화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한국 연예인들의 화장품, 메이크업, 뷰티 노하우가 알려지면서 K-뷰티 성장에 발판이 됐어요. SNS를 통해 K-뷰티를 소개되면서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외국 뷰티 인플루언스들이 앞다투어 한국 화장품을 소개하면서 소위 ‘대박’이 난 겁니다. 한국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수요에 맞춰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브랜드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쇼핑몰 ‘스타일난다’에서 브랜딩한 3CE입니다. 탁월한 패션 감각으로 만들어낸 색조 화장품 3CE는 스타일리시한 디자인과 콘셉트가 트렌드를 선도하면서 급부상했고, 급기야 2018년도에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에 매각되면서 좋은 선례를 남겼어요.”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데는 ODM이 성장한 국내 화장품 생태계에 있다. 참신한 기획력이 뒷받침된다면 단기간 내 진입할 수 있도록 시장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다채로운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무장한 브랜드들이 탄생하면서 K-뷰티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냈고, 제품력 또한 발전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비비크림, 에어쿠션파운데이션, 마스크팩 등 창의적인 제품들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의 위상이 점점 높아졌다. 또한, 정부의 미래 화장품 산업 육성을 위한 다각화 지원과 규제의 합리화로 K-뷰티는 질적·양적 성장을 일궈냈다.

여러 타격에도 불구하고 K-뷰티는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Q 코로나19로 인해 외국 관광객 입국이 제한되는데, 화장품 수출의 영향은 없는지.

다행히도 수출은 면세점 위주의 브랜드가 타격을 입은 정도이고, 국내 오프라인 위주의 유통 브랜드의 매출이 큰폭으로 감소됐다. 주요 화장품 상권인 명동과 인사동, 동대문 일대의 화장품 소매업 폐업이 눈에 띄게 늘어났는데, 팬데믹으로 인한 대표적인 사례로 본다. 서울시 발표 자료에 따르면 150개 상권에서 전년 대비 36.4%의 매출 감소가 일어났는데, 명동은 –62.8%, 인사동 –59.5%, 동대문시장 –57.1%로 각각 전년 대비 매출이 대폭 감소했다.

“2003년 미샤, 더페이스샵 등 로드숍 브랜드들이 성행하면서 명동, 인사동, 동대문 같은 관광 명소들이 뷰티 브랜드들의 주요 마켓 플레이스가 됐어요. 호황기를 누리던 로드숍 브랜드들은 점점 쇠퇴하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기면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인바인드 매출은 거의 바닥이었지만, 반면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수출은 15.7% 늘어났어요. 7,517만 달러 수출액에서 중국이 38억 달러,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Q 작년 우리의 주력 시장인 중국에서 일본, 프랑스에 이어 3위로 떨어졌는데, 그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 브랜드들은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제외하고는 매출 감소를 겪었다. 화장품 중소업체들이 주로 저가 품목인 마스크시트에 집중돼 있어서, 마스크시트의 트렌드 변화가 매출 감소의 원인이 됐다. 반면 일본이나 유럽 브랜드들은 품질과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장기적인 마케팅에 주력했고, 그 결과 고급 시장의 마켓쉐어를 늘려가고 있다. 그나마 한국은 LG생활건강의 브랜드 ‘후’가 프리미엄급으로 자리매김해 중국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고, 최근에는 AHC, 3CE 등의 브랜드들도 장기적인 브랜드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사드 이후로 중국 시장이 많이 변했어요. 그 타격으로 중국 진출 선발대였던 아모레퍼시픽 매장은 많이 철수했습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후’ ‘숨’ 등의 브랜드가 프리미엄 마켓에 안착하는 데 성공해 올해 1분기 수출 기록을 세웠습니다. 사드 이슈로 한국 브랜드들이 고전을 겪는 사이 프랑스와 일본 화장품이 성장했고, 중국 자체의 로컬 브랜드가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일본, 한국 등에서 화장품 고급 인력들을 스카우트해 급성장을 이룬 중국 브랜드들의 발전 속도가 매우 놀랍습니다. 한국 화장품은 전반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지만, 워낙 규모가 큰 시장이기 때문에 수출액을 따져봤을 때는 성장을 했어요.”

Q 그렇다면 한국 화장품 수출의 비중이 늘어난 지역이 있는지 궁금하다.

일본의 2020년 수출액은 전년 대비 59.2%가 증가한 6억 3,892억 달러를 기록했다.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 아이돌 그룹의 인기와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클라스> 등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현재 4차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일본 여론조사기관인 테스티랩에서 6,450명에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한국 화장품을 구매하는 요인으로 저렴한 가격, 예쁜 디자인, 높은 품질, 제품 평판의 순으로 나타났다. 프리미엄급 보다는 가성비가 좋은 화장품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메랩에서 운영하는 스킨가든 역시 한류 붐을 타고 단일 규모로는 일본 내 1위, 1년에 120억 정도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Q 한국 화장품이 전 세계 온라인 사이트에서 팔리고 있는데, 그 비율은 어떠한가.

아마존과 큐텐, 라쿠텐, 쇼피, 라자다, 타오바오, 티몰 등 전 세계 사이트에 직접 입점해서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 해외로 직접 배송하는 전자상거래 수출 또한 폭발적인 증가 추세다. 2019년 4700만 달러이던 전자상거래 수출액이 2020년 1억 4500만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일본은 58.7%로 증가해 4차 한류 붐을 실감하고 있다.

“한국 화장품의 발전은 온라인의 역할이 큽니다. 세계 모든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 한국 화장품이 다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국내에서 온라인을 통해 수출하는 금액도 많지만, 이미 현지에 스탁으로 수출된 제품의 양도 어마어마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좌) 박진영 한국 화장품 중소기업 수출협회 회장과
(우) 이금룡 무역경제신문 발행인이 인터뷰 중이다.

 

진화하고 있는 한국 화장품, 미국 시장 진출에 목마르다

Q 한국 화장품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기 시작했는데 그 효과가 궁금하다.

박진영 회장은 한국 화장품 업계에도 디지털 열풍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피부가 다르고, 주기별로 패턴도 다 달라지는데 정형화된 기준으로 화장품을 적용하는 시장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피부의 광범위한 패턴을 AI가 파악하고, 다량의 데이터로 분석한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화장품이 디지털과 AI를 만나면서 전혀 다른 세일즈 패턴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현재는 컬러나 향 정도만 맞춰주는 것으로 맞춤 화장품을 제조하지만, 이제 정확하게 데이터를 분석해 지금 내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제조하는 시대가 곧 올 거예요. 내 피부와 사이클에 맞춰서 화장품을 제조하기 때문에 이제 화장품 제조업체들은 화장품 원재료(ingredient)와 기술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Q 한국 화장품 수출 시장의 트렌드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

화장품 시장은 크게 기초와 색조로 나뉘는데, 7:3 정도로 기초 화장품 비중이 큰 편이다. 시기적으로 색조가 강세일 때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기초 화장품의 수요가 크다. 특히 한국 화장품은 천연·기능성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피부 트러블 문제가 두드러지면서 기초 화장품에 관한 관심이 더 높아졌어요. 반면 메이크업 제품의 사용 빈도 감소로 인해 색조 시장은 소폭 감소했습니다. 색조 시장만 두고 봤을 때는 립 제품은 큰 폭으로 감소했으나, 노출되는 부위인 아이메이크업의 비중은 높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메이크업 비중이 감소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색조 시장의 2020년 트렌드는 메이크업이나 립스틱, 립틴트 등 마스크에 묻어나지 않는 아이템들이 유망한 제품으로 소개되고 있어요.”

박진영 회장의 말에 의하면 한국 화장품은 프랑스, 일본과 견주었을 때 경쟁이 될 만큼 품질 면에서 퀄리티가 상당히 올라갔다. 화장품 산업이 국력이 될 정도로 성장했는데, 국가 차원에서 화장품 산업 육성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부의 지원이 기반이 돼서 콜마, 코스맥스 같은 ODM 업체가 성장했고, ODM 기반이 단단한 화장품 생태계가 있었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한국 브랜드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화장품이 한국 수출 20대 품목 안에 들 정도로 유망 산업이 됐어요. ‘제2의 반도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합니다.”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무엇으로 판단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한국 화장품은 수출 규모나 산업 규모로 볼 때 미국, 일본, 프랑스 등과 함께 탑 5안에는 든다. 한류 붐의 수혜자로 K-뷰티가 주목받았지만, 제품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최근 5년간 러시아 수출도 늘었고, 동남아 시장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화장품 산업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K-뷰티의 진출이 미비하는 것.

“한국 화장품이 미국 유통 시장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별로 없어요. 중소기업들은 미국 진출을 하기에 너무 영세했고, 대기업 또한 미국 유통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죠. 이미 미국 시장에서 자리 잡은 프랑스, 일본의 화장품처럼 한국 화장품도 미국 시장에 끊임없이 노크하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지원하고, 대기업들이 선봉장으로 나선다면 미국 시장에서도 이른 시일 내에 K-뷰티의 진가를 알아볼 거예요.”

(좌) 박진영 한국 화장품 중소기업 수출협회 회장과
(우) 이금룡 무역경제신문 발행인이 인터뷰 종료 후 기념촬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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