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난다는 고사성어 ‘칠전팔기(七顚八起)’의 끈질긴 정신으로 전 세계를 누비는 무역 일꾼이 있다. 여러 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노력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오뚜기 같은 인생, GSC(㈜지에스씨인터내셔널)의 유대진 대표의 발자취가 그러하다.

충남 논산 출신으로 결혼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샌프란시스코 한인 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활동하는 중 연길시에 스카웃 제안을 받아 연길·두만강 지역 국제 투자 무역박람회의 준비 위원장으로, 그곳에서 10년 박람회를 기획하고 무역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다가 후룬베이얼에 FATA백화점을 짓기까지, 국경을 넘어, 대륙을 넘어 무역인으로서의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지칠 줄 모른다.

언어의 장벽도, 문화의 장벽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오로지 도전의식과 패기로 주어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유대진 대표. 3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그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집대성하는 신개념의 무역 중개 플랫폼 회사 GSC를 설립하고,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GSC ㈜지에스씨인터내셔널 유대진 대표 ▲사진 : 무역경제신문

 

충청도 청년이 미국에서 연길, 연길에서 내몽고까지

사세를 확장하며 무역인의 꿈을 펼치다

Q 처음 미국 땅을 밟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유년 시절부터 웅변에 재능이 있었던 유대진 대표는 웅변 장학생으로 충남 논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상경해 가진 재능으로 웅변학원을 운영했다. 미대 출신의 아내는 미술학원을, 유 대표는 웅변학원과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알뜰살뜰 돈을 모으고 있던 찰나에 잘 되던 학원들을 정리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영어가 유창한 것도, 미국에 도와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도전 정신으로 미국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영어 배운다고 마켓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미국이란 이 넓은 땅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찾던 중에 한인방송에서 아나운서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인사이트를 넓히게 됐어요. 뉴스 앵커로 일하면서 2개의 주간지를 발행하는 신문사도 운영했고, 그러면서 무역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은 한국에서 홈쇼핑이 시작돼 유행하던 시기였다. 한국 홈쇼핑의 좋은 제품을 미국에서 판매할 계획으로, 홈쇼핑 프로그램에 자막을 바꿔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LA 등 전 미주지역과 나중에는 남미까지 한국 홈쇼핑의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한약재가 들어간 키 크는 영양제로 주체못할 정도의 돈을 벌기도 하고, 동충하초로 막대한 손해를 입기도 했다. 그렇게 미국에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일과 사업을 일궈갈 때 샌프란시스코 한인 상공회 회장을 맡게 됐고,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시작한 박람회 ‘코리아 트레이드 엑스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Q 미국에서 연길로 왔는데, 연길로 터전을 잡은 계기가 궁금하다.

“한국 중소기업 제품들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한 박람회가 계기가 돼서 제 인생에 또 다른 기회를 만드는 계기가 됐어요. 우연한 기회에 연길시장이 박람회를 알게 됐고, 연길에서도 이 같은 박람회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하더라고요.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박람회는 흑자를 내면서 4년간의 노하우가 쌓여 국제박람회로서의 모양새를 갖춰나가고 있을 때였죠. 처음에는 도와주자는 선한 마음으로 2006년 샌프란시스코 박람회를 마친 후 바로 연길로 넘어가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쏟아부으며 연길국제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박람회가 끝나자 연길시에서는 지속해서 박람회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6년을 살았고, 새로운 곳으로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을 때 꽤 높은 연봉과 연길시 공무원(연길시경제개발구주임조리, 부시장급) 직급을 요구했는데, 유 대표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연길 정부는 단번에 수락해 계약을 맺었다. 논산에서 서울,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중국 연길에서의 제2라운드가 시작됐다.

Q 연길이라는 곳은 어떠한가, 그곳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하다.

연길은 한민족의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우리 조선족 동포 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다. 뿌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과 언어에 대한 장벽이 없어 어쩌면 결정이 더 쉬웠는지 모른다. 연길에서의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되면서 그는 연길시 경제를 부흥시키고 투자 유치와 기업 유치를 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그중 하나가 연길 IT 밸리 유치 사업이다.

“네이버, 카페24, 아사달 등 그 당시 제가 유치한 기업만 90개에 이르고, 아직도 30여 개가 성공해서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 연길에 왔을 때 관광사업 말고는 지역 주민들이 먹고살 거리가 없어 도시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산업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IT 밸리였고, 이제는 관광에 이어 제2의 사업이 됐을 만큼 발전했습니다. IT 밸리 외에도 세라젬, 농심 백산수, 정관장, 휴롬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을 투자 유치시키며 연길 경제 발전에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IT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무역이나 경영경제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곳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업이 유망한지 전망한 것은 그의 동물적인 감각에서 비롯됐다. 학원사업, 무역회사, 신문사, 홈쇼핑 회사, 박람회 개최까지 다양한 업종에 몸담으며 실전에서 혹독하게 훈련받고, 쌓은 노하우가 바탕이 됐다.

수차례 넘어져도 거뜬히 일어나는 오뚜기 같은 인생, 좌절하고 낙심할 틈이 없다

Q 내몽고 후룬베이얼에 백화점을 세운 계기는.

미국에서와 비슷한 상황으로 그 당시 연길박람회에 후룬베이얼시가 참가했는데, 박람회를 보고 규모와 짜임새에 놀라며 유대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연길에서의 생활 9년째부터 국가지원금이 축소되면서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터라 머리라도 식힐 겸 후룬베이얼 도시를 방문했다. 연길보다 물가는 더 비싸지만, 관광자원이 많아 관광산업이 활성화된 곳, 한국 사람도 없고, 한국 물건이라고는 라면과 김이 전부였던 후룬베리얼에서 유 대표는 자신의 소명과 임무를 발견했다.

“이런 곳에 왜 한국 제품이 없을까? 이곳에서 한국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서 제 도전의식도 또 발휘돼 10년간의 연길 생활을 마무리하고, 후룬베이얼로 거처를 옮겼어요. 3만 평 규모의 한국 상품 전문 백화점을 조성할 계획으로 현지 회사와 합작해 투자하고, 국내 브랜드들을 유치하기 위해 박람회를 열어 많은 계약을 성사시켰죠.

그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련이 찾아왔어요. 건물이 다 지어질 때쯤 사드(THAAD)가 터져서 건물이 소실되고, 현지 회사는 부도가 나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사라졌어요. 좌절할 만도 한데, 어디서 그런 동력이 생겼는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제 모든 자금을 동원하고 빚까지 내면서 계약금을 돌려주고, 다른 지역의 백화점의 지분을 인수해 계약을 철회하지 않은 국내 브랜드들을 책임지고 입점시켰습니다.”

그것이 현재 내몽고 후룬베이얼에 설립한 FATA 한국 백화점이다. 처음 계약했던 36개 중의 16개 국내 브랜드가 입점했고, 유대진 대표 역시 슈퍼마켓, 뷰티숍, 실내골프장을 운영했다. 중심가와 거리가 있는 신도시에 위치한 탓에 생각처럼 영업이 잘되지 않았고, 한국 브랜드들은 1년 후에 철수해 공실이 생겼다. 하지만 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지를 발휘해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유대진 대표 아니더냐. 그는 현지 브랜드들을 입점시키고,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하며 FATA 백화점을 뚝심 있게 이어갔다.

Q 최근 중국에서 느끼는 경제 동향은 전반적으로 어떠한가.

FATA 백화점은 2019년 9월부터 흑자가 돌아서더니 다음 해 1월까지 상승 곡선을 달렸다. 이제 자리를 잡는다고 생각하던 중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영업을 못 하게 되고, 다시 원점이 되었다.

“작년에는 9개월 정도 문을 닫았으니 일 년 중 3/4은 영업을 못 했어요. 운영이 힘들다고 직원들을 해고해서는 안 되고, 외국 기업은 나라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되니 설상가상으로 힘든 상황이 됐죠. 작년 초에 한국에 들어와 다시 나가지도 못하고 화상으로 보고 받다 보니 백화점 운영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11월에 겨우 후룬베이얼로 돌아가 4주간의 격리를 마치고 한 달간 상황을 정리했어요.

한국상품관을 새롭게 단장하고, 백화점에 책임자를 둬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운영을 맡겼죠. 흑룡강성 치치하얼에서도 화장품·식품 도매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도 적임자를 두고 과감하게 운영을 맡겼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국가 간의 이동이 어려운 요즘, 저의 최선의 선택이었죠.”

이번에도 유대진 대표의 동물적인 감각은 통했다. 올해 2월부터 양쪽 모두 흑자 전환을 했고, 이런저런 운영의 문제들도 해결됐다. 그래서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아찔하고 위기의 순간들도 있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으로 헤쳐나가는 유대진 대표. 수백 번 무너져도 일어나는 오뚜기 같은 근성을 가진 그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좌) GSC ㈜지에스씨인터내셔널 유대진 대표 (우)무역경제신문 이금룡 발행인이
인터뷰 중이다. ▲사진 : 무역경제신문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사나이, GSC로 새로운 무역 플랫폼 도전하다

Q GSC는 어떤 회사이고, 어떤 일을 하는가.

2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 GSC는 한국의 좋은 기술을 세계 각국에 무역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글로벌 오픈마켓에서 이미 개발된 상품을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국내에 있는 원천 기술이나 소스를 잘 큐레이션해서 해외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처음 시작으로 ‘메이드인제주’ 브랜드의 비타민C 수출 지원 사업 총판을 계약해 원천 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무역을 준비 중이다.

“송화가루를 이용한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중국 북경 소재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송화가루의 쓰고 텁텁한 맛에 비타민C의 상큼한 맛을 더하면 좋겠다고요. 실제로 제주 감귤을 섞어봤더니 맛이 훨씬 좋더라고요. 그래서 현재 ‘메이드인제주’에서는 송화가루와 제주 감귤의 절묘한 조합을 찾는 레시피를 개발하고, GSC는 중국 회사와의 거래를 중개하고 있습니다. GSC가 발굴한 국내 기술과 소스를 해외 여러 나라 지사장들에게 소개하고, 현지에서 사업이나 상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들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현재 GSC는 해외 47개 지역에 지사장을 세웠고, 앞으로 70개 지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최소한 그 나라에 거주한 지 10년 이상 되고, 그 나라의 언어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으며, 그 지역에서 탄탄하게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다. 해외 지사장과 더불어 센터장을 두고, 자신의 마켓 플레이스에서 GSC가 제공하는 원천 기술이나 소스가 필요한 곳에 무역 중개를 하고 수익금의 일부를 가져가는 운영 방식이다.

GSC가 현재 차세대 기술로 주목하는 것이 광열기다. 살균·멸균 효과가 뛰어나고, 복사열로 하기 때문에 400℃의 열에서도 건조하지 않다. 이미 본사에서 중국 우한 병원에 1000대를 협찬해 그 효과를 입증받았다. 가정용으로도 쓰일 수 있지만 농업단지, 축산단지에서도 꼭 필요한 기술이다.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이 광열판의 해외 독점권을 GSC가 가지고 있고, 모든 지사장과 센터장에게 내용을 공유할 예정이다.

GSC는 비타민C, 광열기에 이어 나노칼슘을 후발 주자로 준비하고 있다. GSC 이름으로 OEM 생산 판매해 각 지사를 통해서 소개할 예정이다. 금형이 아닌 옷을 입혀 비용을 줄인 로봇도 상용화시킬 계획이다. 식당, 호텔 등 공간에 맞게 개발하고 옷을 입힌 로봇 기술도 현재 독점 계약한 상태다. 앞으로도 GSC는 희소성 있고, 가치 있으며, 아이디어가 넘치는 기술과 소스를 개발해 전 세계 지역으로 판매할 수 있는 무역 중개 플랫폼 역할을 하고자 한다.

Q 월드옥타 지자체 통상교류 위원회 위원장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가.

“GSC가 그다음으로 생각한 인력 사업이 바로 월드 옥타와 연결돼 있는데요. 옥타에서 진행하는 ‘홈커핑 프로그램’ 있어요. 내 고향 지역에서 찾아가 제품을 팔아주고, 취업도 알선해주고, 불우이웃도 돕는 월드 옥타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인데요. 농어촌 지역을 가봤더니 노동 인력이 매우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각 지역 옥타 회원들에게 인력 모집 공고를 공유해 외국인 노동자의 한국 취업을 알선하고, 일하는 동안 통역, 관리, 비자 등의 문제를 GSC에서 담당하려고 합니다.”

현재 논산, 부여, 공주, 고양, 완도, 광양 등의 지자체와 공조해 시스템을 만들고, 9월부터 프로그램을 시작할 예정이다. 해외의 근로 인력들이 한국 농촌과 어촌 등에 투입돼 생산성을 높이고, 해외 인력들을 소개한 지사와 GSC는 중개 수익을 얻는 식이다. 모집에서부터 이동 수단, 비자 문제, 인력 관리, 주거 환경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다년간의 외국 생활로 노하우가 있는 유대진 대표가 직접 시스템을 설계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Q 유대진 대표의 경험에 빗대어 차세대 무역인들에게 조언하자면.

“할 일은 많고 일할 곳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미국, 중국, 내몽고까지 삶의 터전을 바꿔가면서 느낀 제 살아있는 경험입니다. 도전하면 위험과 모험이 따르지만, 성공할 기회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도전, 내 눈앞에 던져진 도전들은 모두 해보기를 권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도전이 무모한 것도 있었고, 성과가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그 도전의 경험들이 저를 완성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되거든요. 이미 한국 사람들이 많은 지역, 개발된 지역에만 가려고 하지 말고, 개척해야 하는 불모지 같은 지역에도 눈을 돌려보세요. 보물섬 같은 매력적인 기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대진 대표는 해외 진출에 있어 언어나 문화가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지가 있다면 직접 가서 부딪히고 현지 문화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적응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현지 생활에 익숙해지고 그곳에서 부를 축적한다면 사회 공헌이나 재능 기부 등 현지에 도움이 활동도 꼭 찾아서 하라고 조언한다.

사람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두 갈래로 나뉜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는 사람, 반면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성공의 밑거름을 만드는 사람. 유대진 대표는 실패를 경험 삼아 얘기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후자에 가깝다. 아직도 할 일이 많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의 3번째 라운드가 기대되는 이유다.

(좌)무역경제신문 이금룡 발행인 과(우) GSC ㈜지에스씨인터내셔널 유대진 대표가
인터뷰 종료 후 기념촬영 중이다. ▲사진 : 무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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