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삼영물류대표이사, 한국물류학회 부회장
이상근 삼영물류대표이사, 한국물류학회 부회장

2020년 초, 준비 없이 시작된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팬데믹)은 세계 경제뿐 아니라 우리 생활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코로나에 적응해 가는 ‘위드코로나’ 단계에 이르렀고,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도 본격화되고 있다.

여러 경제 지표들이 회복되고, 생활은 점차 적응되고 있긴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대한 우려는 심화되고 있다. 해상물류, 항공물류, 육상물류 운송수단이 턱없이 부족하고, 항만과 공항의 하역 인력, 트럭기사의 부족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속되고 있다. 물류 운임 상승과 운송 지체로 인한 원자재 수급에 차질로 제조업 경기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장기적인 경제 회복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 운임 상승과 물류 지연 등 물류대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급 불균형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초부터 생산 라인이 중단되고, 국경이 폐쇄되며, 항만과 공항이 셧다운되면서 수출입 물동량이 얼어붙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계에서는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기침체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막대한 경기 부양 자금을 풀었다. 더불어 백신접종률은 크게 높아지고, 코로나19 팬데믹 생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보복소비 등으로 소비 수요가 일시적으로 폭발해 경제 상황이 나아진 듯 보였다. 하지만 원자재 조달, 생산, 유통, 물류 전반은 회복과 정상화가 되지 못하면서 수급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다. 컨테이너선은 부족하고, 항만 노동자와 트럭 운전사, 창고 노동자는 웃돈을 줘도 못 구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마비로 인한 물류의 지연과 적체 상태는 해결책 없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해상물류 대란은 글로벌 선사들이 코로나 이전부터 선박의 발주를 미루고 있다가 급격히 늘어난 물류 수요에 대응할 선박이 마련되지 못한 것도 원인을 더했다. 이외에도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항만과 공항 직원의 코로나 확진자 발생과 이들 시설의 폐쇄, 수에즈 운하 사고 등 인프라 악재가 연이어 발생한 바 있다. 해상운임의 급증으로 물류비 부담을 짊어지게 된 기업들은 선적거래조건 변경, 통관수수료율 재협상 등에 나섰지만, 더 빠른 속도로 상승 중인 해상운임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일뿐더러 당장 화물을 실어 나를 선적공간(스페이스) 확보조차도 어려운 실정이다.

▶ 부산-LA간 상품 배송기간은 최대 4달, 운임은 10배까지 상승

미국 내 대표 항구들이 병목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선박들이 항구로 들어오지 못하면서 LA 주변 연안이 거대한 대기실로 변한 지 오래다. 10월 19일 현재 최대 항구인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항에는 157척의 화물선이 입항하지 못하고 두 항구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대기 선박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다. 이미 도착한 선박의 컨테이너도 멈춰 있기는 마찬가지다. 인력 부족으로 화물 하역 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말 쇼핑 대목을 앞두고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두 항구가 사실상 멈춘 것이다. 미국 서부 항만의 병목 현상은 동부 항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인 폭스비즈니스는 ‘조지아주의 서배너항 앞바다에 20척에 달하는 화물선이 입항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산에서 LA까지 배로 10∼12일이 걸리고 항만 병목 현상으로 상품을 받는데 20일이 추가로 소요된다. 해상운임도 크게 올랐다. 한인 업체들은 컨테이너 운임이 최대 10배까지 뛰었다고 한다. 미국 대형 유통업체에 한국산 제품을 공급하는 박진규 전 LA 한인 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컨테이너 1대 가격이 작년 2월 1,800달러였으나 최근에는 한때 2만 달러를 넘었다’며 ‘급행료를 줘도 배를 못 구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디스플레이 제품을 수입해 미국에 판매하는 인아 디스플레이 조시 김 대표는 ‘물류대란 이전과 비교해 컨테이너 운임이 최대 10배 뛰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와 거래 관계를 유지해온 대기업 현지 법인들도 컨테이너 운송비가 7∼8배 올랐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기업 미주 법인들은 해상운임 상승으로 원가가 올라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하게 되자 일부 품목의 미국 현지 판매를 접었고 트럭 운전사 부족으로 미국 내륙 지역 상품 배송을 중단했다.

▶ 화물 가치로 262억 달러(30조 원)에 달하는 선박이 LA 앞바당에 대기 중  

미국은 물류대란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항만 당국에서 강력하게 대처하는 모습이다. LA항과 롱비치항 당국은 화물 터미널에 선적된 컨테이너가 화물 터미널에 9일 이상 머물면 화물운송회사들은 LA항과 롱비치항 컨테이너 하나당 하루에 100달러의 벌금을, 열차에 실려 이동하는 컨테이너는 3일마다 벌금이 추가된다고 발표했다.

현재 미국의 물류대란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물류대란 해소를 위해 LA항과 롱비치항의 24시간 가동을 지시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물류 적체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트럭 기사가 부족하고, 컨테이너 하역 작업자도 모자라 백악관은 군 병력 투입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로 인해 사재기가 급증하고,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는 미국 전역에서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물류대란 여파로 소매업체들은 제품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과 제품을 선박에서 매장으로 기는 운전자 부족까지 겹치며, 소매업체들이 재고 확보에 난항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 물류 대란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전망

미국에는 당장 물품을 항구에 내릴 일손이 부족하고, 이걸 미국 전역으로 나를 트럭 기사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트럭 운송은 미국 내 상품 유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물류망의 핵심인데, 현재 미국 전역에서 트럭 기사 8만여 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와 열악한 근무 환경이 겹쳐 고령 운전자들의 은퇴가 늘어났고, 국경 폐쇄로 이주 노동자가 줄어든 게 컸다. 지난 8월 미국에서는 자발적 퇴직자 수가 427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기업 구인건수는 석 달 연속 천만 건을 넘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노동자들이 더 안전하고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아 움직이면서 기업들의 인력난은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노동자들의 몸값이 높아지면서 임금 인상과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 이후 미국 내 파업 건수는 40건, 1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이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은퇴 경향 비교·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머 세대의 은퇴 경향을 비교·분석한 결과 지난 8월 현재 '초과 은퇴자'가 300만 명 이상으로 코로나19 사태 후 일자리를 떠난 525만 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에 조기 은퇴자가 많았던 이유로는 두 가지 가설이 제시됐다. 하나는 코로나19 감염과 사망 위험에 취약한 고령층이 일찍 퇴직을 결심했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코로나19 사태 후 자산 급등에 힘입어 주머니가 두둑해진 근로자들이 더는 일 하러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 영국도 트럭 운전기사의 부족으로 초래된 물자 수송난이 갈수록 심각

코로나19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등으로 유럽에 트럭 운전사 40만 명이 부족한 가운데 이 중 4분의 1인 10만 명이 영국의 부족분으로 추산되고 있다. 트럭 운전기사의 부족으로 초래된 물자 수송난이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이른바 ‘패닉 바잉’(사재기와 같은 상황)에 나섰다.

지난 9월 말부터 영국 전역에서는 극심한 주유 대란이 빚어졌다. 수많은 주유소가 기름 재고가 바닥나면서 영업 중단 간판을 내걸었다. 그러지 않은 주유소들은 밀려드는 차량으로 홍역을 치렀다. 슈퍼마켓 등 상점들도 물건이 채워지지 않아 진열대가 비어 있는 상태로 방치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트럭 운전기사의 부족으로 초래된 물자 수송난이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이른바 ‘패닉 바잉’(사재기와 같은 상황)에 나선 결과였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5위 경제를 자랑하는 영국이 절대적인 노동력 부족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은 브렉시트와 코로나19가 한데 맞물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인이 대거 귀국한 상태에서 브렉시트로 입국 비자 발급이 제한되면서 EU로부터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다.

▶ 글로벌 물류대란은 원자재와 부품 수급 문제로도 이어지는 중

원자재와 부품, 생산장비의 수급의 어려움으로 생산에 차질을 겪고 있는 기업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어온 자동차 업계 외에도 전자기기나 일반 기계류, 컴퓨터, 가구 등 전 산업계가 공급 위기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CNN비즈니스의 10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여성 의류 회사 J.Jill의 마크 웹 최고 재무 책임자는 공급망 혼란 증가로 운송 비용이 증가하고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할인 행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재고 부족의 여파를 나타내듯, 온라인 쇼핑 흐름을 추적하는 어도비는 올해 온라인 판매 시장에서 뜬 ‘품절창’ 수가 2020년 1월보다 172%에 증가했다고 밝혔다.

할인율도 대폭 낮아졌다. 소매업체의 매출 추적 사이트인 브래드스딜즈에 따르면 지난 노동절 연휴에 팔린 남성복의 평균 할인율은 올해 54%로 1년 전 74% 대비 20%포인트 감소했다. 신발의 평균 할인율도 지난해 62%에서 올해 51%로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 원가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은 임금 인상으로 이어져 ‘임금·물가의 악순환적 상승’ 효과 초래

CNBC는 ‘도시의 하이퍼인플레이션 경고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0년 만에 최고치에 육박하는 등 물가상승이 악화할 거란 우려 속에 나왔다’고 전했다. 미국 9월 CPI 상승률은 5.4%로 5개월 연속 5%를 넘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11월도 비슷한 수준이라면 1991년 이후 미국 물가상승률이 최장기간 5%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원가상승 압박에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 미 생활용품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은 지난달 미국 내 10개 제품군 가운데 9개 가격을 인상했다. 펩시는 내년 1분기까지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테슬라도 10월 23일 미국 내 차량 가격을 2,000~5,000달러씩 인상했다. 기업의 가격 인상은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를 키우고, 이에 다시 물가를 올릴 수 있다. 이른바 ‘임금·물가의 악순환적 상승(wage-price spiral)’ 효과다.

이로 인해 공급망 병목 현상의 충격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위드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찾아온 글로벌 물류대란은 조달, 생산, 유통, 물류를 넘어 물가 상승에 더해, 광고 가뭄으로 인한 빅테크 실적 악화 우려까지 더해지고 있다. 또한, 각국은 반도체 공급망 문제와 더해 지역주의를 강화하려는 움직임 등 글로벌 경계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 앞으로 국내 수출기업들의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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