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희 前월드프랜드 볼리비아파견 나이파 자문관 / 경제학 박사
이인희 前월드프랜드 볼리비아파견 나이파 자문관 / 경제학 박사

볼리비아에도 부동산 임대제도 중 전세제도가 있는데, 한국의 전세와 비슷하다. 부동산 전세제도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볼리비아에만 있는 독특한 부동산 임대제도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볼리비아에도 부동산 매매와 월세 그리고 전세제도가 있다.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중남미에서 볼리비아만이 유일하게 전세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볼리비아는 남미대륙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은 한국의 11배 정도 크다. 인구는 약 1,100만 정도, 1인당 국민소득은 3,700달러로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가장 빈국(貧國)에 속한다. 인구 대부분은 주로 도시에 살고 있는데, 수도인 라파스와 인근 엘알토 지역에 약 200만 명, 열대지역인 산타 쿠르스에 약 200만 명, 기타 코챠밤바·따리하·포토시·수쿠레·오루로·베니 등 도시에 집중돼 있다. 그외 기타 적은 수의 원주민들이 농촌이나 산악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라파스는 해발 3,500~4,1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도이며, 산소가 공기 중에 60~70% 정도밖에 되지 않아 빠르게 뛰면 숨이 차서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고산지역이라 그런지 파리, 모기 개미 등 벌레 들이 거의 없다. 안데스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고원평야가 이곳 라파스 지역에서부터 지형이 꺼지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곡을 따라 형성된 도시다. 계곡을 따라 집들을 짓다 보니까 평지가 많지 않다. 이곳의 도로는 대부분 아래로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도로이고, 심지어 공원의 의자들도 옆으로 비스듬히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 한국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볼리비아의 전세 계약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라고 하는 전세 계약의 주요 내용은 한국과 유사하나 특이한 점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내용을 포함한다. 계약만기일 전에 집주인이 돈을 돌려주지 못하면 소유권이 임차인에게 넘어가게 된다는 개념이다. 임대차 계약 기간은 보통 4년을 넘지 않으며, 5년이 넘어가면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보내지 못한다. 전세금액은 집 시세의 약 30~40% 정도에서 형성된다.

볼리비아의 수도인 라파스는 가게 월세가 만만치 않다. 시내 중심가 가게들은 25평 기준으로 월세가 한국 돈으로 200~400만 원 정도이고, 그 이상 되는 곳도 많다. 대로변 중심가 뒤편의 골목으로 가면 월세가 좀 싸긴 하지만 사무실 밀집 지역 부근은 그렇게 많이 싸지는 않다. 점포 수가 많지 않고 관공서나 외국계 회사들이 모여 있는 소비도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장사가 비교적 잘됐다.

볼리비아 현지 노점상(사진 = 이인희 박사 제공)
볼리비아 현지 노점상(사진 = 이인희 박사 제공)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을 때 휴업 기간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법령이 발현됐고, 실제로 가게 문을 닫은 기간에는 상인들이 임대료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월세를 내지 않았다.

볼리비아는 건물주가 임차인들을 형제·자매라는 뜻의 ‘에르마노(Hermano)’, ‘에르마나(Hermana)’라고 부른다, 한 건물에서 5년 넘게 장사를 하면 건물주가 임차인을 마음대로 내보내지 못하고, 10년 넘어가면 건물주와 임차인은 공생관계로 봐야 한다.

수년 전 건물주인이 사망하자 상속인인 아들이 임차인을 나가라고 해 소송이 붙은 적이 있었다. 재판 결과는 그동안 임차인이 낸 금액이 건물의 점포가격보다 더 많이 지급했으므로 소유주는 임차인의 것이라는 판결이 났다. 주인이 뒤바뀐 것이다. 가끔 비어있는 가게들이 있는데 월세는 비싸고 계약은 4년만 해주기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들어가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대개 돈이 많은 부자라서 점포를 비워놓고 아예 해외에 나가서 사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기서도 물론 건물주가 갑(甲)의 상황에 있다. 하지만 대체로 세입자와 함께 공생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안 그러면 상인들로부터 돌팔매 맞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법은 있지만, 가끔 고위관리가 지방에서 돌팔매를 맞는 경우가 있는 나라가 볼리비아다.

볼리비아를 사회주의 국가라고 보기도 하는데 정치제도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국민의 생각이 대체로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 부자들을 질시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지만, 식량이 부족하거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잘사는 집으로 몰려가 식량을 내놓으라고 시위도 하고 때로는 고위관리 집 앞에서 월급을 깎으라고 데모를 하기도 한다.

볼리비아사람들은 재물을 모으는데 우리처럼 그렇게 악착같은 집념이 없다. 장사하는 상인들도 그렇게 악착같이 물건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수시로 문을 닫기도 하고 옆집의 물건값이 더 싸다고 하면 거기 가서 사라고 말할 정도로 장사에 열의가 없다.

▶ 가난한 월세를 살면서도 소박한 꿈에 만족하는 볼리비아 사람들

볼리비아 소녀 (사진= 픽사베이])
볼리비아 소녀 (사진= 픽사베이])

한 평범한 모녀가 있다. 이들의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2년 정도 돈을 모아서 축제에 참가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의상비와 참가비용을 본인들이 부담해야 한다. 축제에 참가하는 것보다 돈을 모아서 집을 사는 것이 낫지 않냐고 물어보면 지금 월세 85,000원을 내고 있는데 100,000원 정도 되는 월세 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라며 집 걱정은 없다고 한다. 할머니, 이모, 엄마와 함께 사는데 본인은 스페인어 강사를 하고, 엄마는 파출부 일을 해서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다고 한다.

첫 번째 목표는 라파스 시내에서 열리는 라파스 축제에 참가하는 것이고, 돈이 조금 더 모이면 그때는 최고의 꿈인 볼리비아 국민축제 ‘오루로 축제’에 참가하는 것이다.볼리비아의 오루로 축제는 브라질 삼바축제와 페루의 우노 축제와 함께 남미 3대축 제중 하나로 꼽힌다. 매년 2월 말경 라파스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지방 도시 오루로에서 개최되는데, 공연 참석 인원만 5만 명이 넘는 볼리비아 최대의 국민축제로 축제일 2~3개월 전부터는 전국이 축제 준비로 바쁘다. 오루로 축제가 끝난 후에는 각 지방 도시에서 자체로 축제를 개최하는데, 이 축제 기간에는 전 국민이 축제 열풍에 빠져든다. 볼리비아는 현재 2022년 2월 26~27일 개최되는 오루로 축제준비로 전국이 이미 축제 분위기로 들어갔다.

볼리비아는 한국과 비교해서 10년 정도 평균수명이 짧지만 소박한 꿈과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집과 재물에 집착해서 사는 한국인들의 모습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 하는 회의도 든다.

▶ 빈 땅에 5년을 살면 소유권이 생기는 우쓰루빠시온 제도

볼리비아에는 빈 땅에 5년을 살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우쓰루빠시온’이라는 부동산 제도가 있다. 빈 땅에 집을 짓고 5년이 지나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제도로, 볼리비아에서 택지개발이 되면 주민들은 자기 땅에 먼저 울타리를 친다. 여기서도 부동산 등기제도 같은 것이 있는데, 땅문서를 잃어버리면 차라리 우쓰르빠씨온 제도를 활용해 내가 여기에 살았다고 증명해 새로운 문서를 받으면 된다.

최근에 베네스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이 다른 나라로 떠난 자국민들에 대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집을 계속 비워두면 정부가 인수해 집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언론에 발표한 적이 있다. 남미국가 특유의 우쓰로빠시온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부동산값 폭등은 서울과 지방에서 아파트 한 채라도 가진 사람들에게는 최단기간에 최고의 부동산 수익을 가져다줬다. 반대로 평생을 모은 월급으로는 이제 서울에서 변변한 집 한 채 갖기도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직장인들은 집값이 비싸서 직장 근처에 살기는 더욱 어려워졌고, 시내 중심가 아파트에는 노인층 인구가 많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내 집 마련의 어려움과 고심이 더욱 커진 한국 사람들에게는 볼리비아의 우쓰르빠시온 제도는 꿈만 같은 일이다.

▶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공개념’이 가미된 볼리비아의 제도

볼리비아를 ‘사회주의 국가’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중국과 소련에 가깝게 지내고는 있으나 미국과 사이가 안 좋아서 야기된 정치적인 이유가 더 크다. 코카잎 재배면적을 줄이라는 미국의 요구에 코카잎 재배 농가의 유권자를 무시할 수 없는 볼리비아 정부와의 이해 충돌이 그 주요 원인이었다.

자유민주와 자본주의 체제인 우리는 공개념이라는 말만 나오면 공산주의를 떠올리면서 분기하기도 한다. 토지공개념, 부동산공개념, 자본공개념 등 공개념은 마치 사회주의의 폐단으로 보고 격렬히 반대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회적 불평등이나 대기업의 지나친 독점과 불공정한 경쟁, 소득 불균형과 사회복지, 부동산 폭리문제와 부의 편중문제를 지적하면서 정부의 시장개입이나 규제 등의 조치를 요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부의 사회주의 적인 공개념을 비판하면서 자유경제체제와 시장경제를 보호를 주장하기도 한다. 사회주의적 공개념이 메뚜기 같이 필요에 따라 옮겨 다니면서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 한다.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는 경제성장률이 5%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라파스 시내 중심가에는 신축 아파트건설은 계속되고 있으나 아파트나 단독주택 같은 부동산가격은 특별히 오르지 않고 있다. 이것이 볼리비아와 한국이 다른 점이다.

부동산값 폭등으로 시작된 불로소득 문제와 다양한 여러 집단의 이해가 얽혀있는 문제들을 조정하고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겪는 과정이지만 각자의 지나친 이기주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서로 이해하고 타협한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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