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해외진출전략 비즈니스 바이블-이것만 알아도 아마존 1등 한다' 펴내
李 "수출 원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 도움 주고 싶다" 포부도
"수출지원체계 완전히 바꿔야…'K-Alibaba' 같은 시스템 구축, 현지 물류창고 절실"

KDC(Korea Distribution Center) 이태목 대표<br>
KDC(Korea Distribution Center) 이태목 대표

'삼성맨, 국회보좌관, 경기도 자문관, 경기도 북미사무소장, 사업가….'
 
KDC(Korea Distribution Center) 이태목 대표가 지금까지 거친 직함이다.
 
미국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아마존에서 '소형 빔 프로젝터 카테고리 1위', 아마존에서 '가장 갖고 싶은 프로젝터 1위'에 각각 오르며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2016년 9월에 벌어진 일이다.  이 대표는 그후 이런 경험을 정리한 책을 지난 7월 출간했다. 
 
'중소기업 해외진출전략 비즈니스 바이블-이것만 알아도 아마존 1등 한다(도서출판 SUN)'
 
"보잘것없는 사업 경험을 갖고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미국에 진출하길 원하는 한국의 많은 중소기업들에게 분명 도움이 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국 중소기업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 

'ICTC 중소기업 국제관세무역자문센터' 대표 직함도 함께 갖고 있는 이 대표가 책을 쓰게 된 동기다. 
 
이금룡 도전과나눔 이사장 겸 K글로벌타임스 발행인이 이태목 대표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 삼성에서 20년 가량을 근무했다. 주로 어떤 일들을 했나. 
- 84년 1월에 공채 24기로 삼성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터라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그후 생산관리, 신규사업, 방산영업과 본사 인사차장 등을 거쳤다. 

삼성전자에선 본사 인사부장, 총무부장, 산업보안부장, 홍보그룹장도 했었다. 2005년엔 '이병철회장상'이라고도 불리는 삼성그룹 기술상을 수상했다. 레이저거리측정기가 아이템이었다. 꼭 22년을 삼성에 있었다.
 
▲ 국회와 지자체 경험도 했다. 어떤 역할들을 맡았었나. 
- 삼성을 다니다 2000년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1년 6개월로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과학분야, 정보통신, 게임산업, 콘텐츠산업, 사이버교육 관련 분야를 두루 접할 수 있었다. 그때 해당 분야의 중소기업인들도 많이 만났다.

이후 삼성에 다시 들어갔다가 이번엔 삼성에서 파견 형식으로 경기도 투자유치자문관을 맡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레고랜드, 실내스키장 등 대형개발 투자유치사업이 당시 담당했던 일들이었다. 그러다 경기도가 2009년 9월 당시 로스앤젤레스(LA)에 아예 북미사무소를 설립했다. 나는 그때 삼성을 그만두고 경기도 북미사무소장으로 갔다. 

▲ 경기도에 있는 중소기업들을 미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업무가 주였나.
- 그렇다. 코트라(KOTRA)와 같은 지사화 사업이 주업무였다. 수출촉진단, 시장개척단 지원 업무도 맡았다. 일산 킨텍스에서 매년 열리는 지페어(G-Fair)에 미국 바이어를 초청해 경기도의 중소기업들과 수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업무중 하나였다. 

하지만 성과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다. 지사화사업을 통해 연간 10~20개 기업을 지원했는데 수출 금액은 '제로(0)'였다. 

기업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지사화사업을 해외 수출대행 사업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프라이팬, 화장품 케이스, 화장기기, 타일, 양초 등이 대표적인 제품들이었다.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도지사가 바뀌면서 해외 수출대행 사업은 계속하기가 힘들어졌다. 2009년부터 맡았던 경기도 북미사무소장은 2014년 12월에 그만뒀다. 

여기서 에프소드가 하나 있다. 소장을 하면서 한 전시회에서 한 기업 대표를 만났는데 그가 대뜸 "죄송하지만, 소장님이 저희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나요?"라고 묻더라. 무엇가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충격이었다.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미안하기도 했다.

▲ 그러다 이 대표께서 직접 사업에 뛰어든 것이냐. 
- 물론이다. 31년간 월급받던 인생을 청산하고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북미사무소장을 그만두고 그 달 말일에 KDC를 곧바로 설립했다. 

경기도미주유통센터(GDC)라는 법인명을 이름만 바꿔 설립했다. KDC를 통해 한국 제품을 미국에 널리 유통하겠다는 게 포부였다. 

▲ 아마존에서 1등을 한 미니 빔 프로젝터는 어떻게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 SKT에 있는 고등학교 동기의 부탁이 시작이었다. 그 친구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참여할 예정이니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는 회사에서 프로젝터 연구책임자였다. 

당시 SKT는 중소기업인 크레모텍이라는 회사와 레이저 빔 프로젝터를 공동으로 연구개발하고 있었다. 친구 부탁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만난 제품이 세계 최초의 포커스 프리 레이저 빔 프로젝터인 'UO 스마트 빔 레이저'였다. 큐브형으로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정도의 작고 귀여운 제품이었다. 이 제품이 내 인생을 바꿔놨다.

이태목 대표<br>
이태목 대표

▲ CES와 같은 행사 지원 업무를 하다 아예 빔 프로젝터를 미국에 유통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냐. 
- 그렇게 됐다(웃음). 곧바로 SKT, 크레모텍과 독점계약을 추진해 미국 판매권을 따냈다. 타깃 시장은 물론 한인들이었다. 

LA를 비롯해 시카고, 뉴욕, 뉴저지, 텍사스 등에 있는 한인 파트너들과 계약을 했다. 개당 원가가 200달러를 넘고 현지에서 400달러가 넘는 가격에 판매를 시작했는데 초도 물량 1000개가 일주일도 안돼 다 나갔다. 돈좀 벌겠다 생각했다(웃음). 그런데 그뿐이었다. 리오더(재주문)가 없었다. 

▲ 왜 판매 파트너들로부터 추가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나.
-한인들의 판매 대상도 거의 대부분이 한인이었다. 좀더 확장해야 아시아계였다. 내가 경기도 북미사무소장을 하면서 현지에 연결해 제품을 판매했던 대상도 미국에 있는 중국인들이었다. 

당시 고객들이 스마트 빔 프로젝트와 같은 첨단 전자제품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기도 했다. 초기 물량 가운데는 에러도 적지 않아 반품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SKT 본사에선 지속적인 오더를 독촉했는데 한인 거래선은 백지 상태였고,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없었다. 6개월 만에 쓴맛을 봤다. 

▲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전의 기회를 잡았는지 궁금하다. 
-안되겠다 싶었다. 가장 먼저 직원을 늘렸다. 마케팅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미국내 주류사회 영업을 우리가 직접 하자고 마음 먹었다.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도·소매 기업들을 분석해 공략 대상도 정했다. 길거리, 쇼핑몰 등에서 매일 빔 프로젝트를 시연해 제품을 알렸다. 

중간중간 관련 기업 미팅도 끊임없이 했다. 그러다 영상 관련 장비를 판매·대여하는 '새미스 카메라'에 미팅을 하러갔다가 우연히 화장실을 오가는 중에 그 회사 회장까지 만나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 만났던 그 노인이 난 회장인줄 알지도 못했다. 그렇게 기회가 하나 둘씩 생겼다. 

▲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새미스 카메라에 제품을 입점한 뒤 미국내 히스패닉계의 베스트바이로 불리는 '쿠라샤오'에도 벤더로 등록했다. 미국 동부시장을 잡고 있던 비앤에이치(B&H)와도 계약했다. 

그런데 이들의 수십개가 넘는 오프라인 매장에 우리 제품은 1~2개씩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물류센터가 없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넘기 힘든 벽이었다. 

해외에 수출하려는 중소기업들에게 물류센터와 같은 인프라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온라인 비즈니스는 물류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류센터 등이 좀더 갖춰지면 중소기업 수출은 지금보다 수 십배 늘어날 수 있다. 다시 우리 사업이야기로 돌아오면 판매를 해도 이익이 남질 않았다. 한국에서 제품을 가져오기 위해선 돈도 계속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창고에 재고가 쌓여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다간 연기처럼 다 사라지고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K글로벌타임스 이금룡 발행인(오른쪽)이 이태목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K글로벌타임스 이금룡 발행인(오른쪽)이 이태목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쯤에서 아마존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마존에서 1등하는 것은 결고 쉬운일이 아닌데 말이다. 
-1년 3개월 가량 각종 마케팅 등을 통해 노력한 결과가 서서히 아마존에서 나타났다. 100등을 하던 우리 제품이 가속도가 붙더니 1등까지 가기까진 고작 일주일 정도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6년 9월2일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하루에 100개 가량이 팔려나갔다. 3만~4만 달러의 매출이 매일 발생했다. 너무 기뻐 직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은 이런때 쓰는 것 같다.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아마존에 입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많은 제품을 판매하길 원한다. 조언해줄 내용이 있나. 
- 물론이다. 우선 우린 1등을 하기 전까지 아마존에서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 아마존마케팅서비스(AMS)를 위해 하루 2~3달러 쓴 것이 전부다. 

아마존의 성적표는 종합 결과인 셈이다. 1년 넘게 오프라인을 통해 각종 시연과 컨벤션 등 종합 마케팅을 한 결과가 아마존에서 빛을 본 것이다. 무엇보다 가격정책이 중요하다. 

오프라인 등을 통해 우리 제품을 간접적으로 접한 소비자들은 아마존에서 제품을 찾는다. '글로벌 가격정책'이란 같은 가격으로 판매해야한다는 말이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이 가격을 다 보고 있다. 한 곳에서 가격이 1달러 떨어지면 다른 곳도 (AI가)바로 1달러를 내린다. 

가격이 일관성이 없으면 개척한 시장을 다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온·오프라인 판매점과 계약할 때 MAP(Minimum Average Price)가 매우 중요하다. 

▲ 수출이 화두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수출 기업수가 줄어드는 등 위기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수출과 관련해 정책적으로 제언할 내용이 있나.
- 책에도 썼다. 수출하면 코트라(KOTRA)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60년된 오래된 시스템과 수출지원 조직으로는 새롭게 성장하는 중소기업의 수출을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형태의 중소기업 수출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시장이 더욱 커졌다. 

우선 한국 중소기업들이 해외의 유통채널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수출지원체계를 완전히 바꿔야한다. 'K-Alibaba'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이를 통해 국내와 해외를 직접 연결해줘야한다. 거래할 기업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수출하려는 중소기업들이 자신감을 갖고 프리젠테이션(PT) 자료를 만들고 거래할 기업들을 접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 

앞서서도 이야기했듯이 현지에 공동물류창고를 만들어 기업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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