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비나 이정훈 대표<br>
이정훈 핑거비나 대표

코로나19로 인해 강제 자가 격리 한 달이 지나면서 베트남 지인과 동료들은 요리사가 다 되어간다고 농담처럼 얘기를 건넨다. 매출은 없지만 직원들의 급여는 지급해야 하고, 진행하고 있던 일은 언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더 지치고, 속병만 쌓여간다고 말한다.

'사면초가' 베트남 정부,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 집중 

어느덧 두 달 넘는 봉쇄에 사무실은 닫혀 있고, 공장은 중단됐다. 하루 벌어 먹고 살았던 베트남 서민층은 물건을 살 돈이 없어 군대 배급에 의존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부 정책에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거주지에 갇혀 있는 생활이 답답함을 넘어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날이 많아져 한국 복귀를 요청하는 주재원과 직원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복귀 후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있는 비행기가 언제 뜰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으로의 복귀는 자칫하면 베트남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베트남 정부가 봉쇄와 격리 상황에서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베트남 정부가 가장 강력한 통제 방법으로도 델타 변이 확산세를 잡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백신 수급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8월 24일부터 3일간 일정으로 미국의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베트남 팜 민 찐(Phạm Minh Chính)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기존에 약속한 코로나19 백신 500만 회분에 더해 화이자 백신 100만 회분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슝보 주베트남 중국대사도 팜민찐 총리에게 백신 200만 회분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베트남 정부는 미국과 중국을 통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코로나 백신을 확보한 셈이다.

베트남은 국민들의 이동과 모임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코로나19 백신 수급을 확대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 회복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6월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5.64%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1.82%보다 높은 수치지만, 2020년을 제외한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을 포함한 주요 기관들은 베트남이 코로나19 상황을 잘 억제하고 있다고 판단해 5~6% 이상 낙관적인 성장을 예견했는데, 5월 이후 코로나 델타 변이 전국 확산과 낮은 백신 접종률로 올해 초 전망치보다 하향 조정된 4.8%로 입장을 변경했다.

▶ 경제정책연구소(VEPR), 베트남 경제 전망 세 가지 시나리오

(자료 = 현지 언론 보도 자료, KOTRA 호찌민 무역관)
(자료 = 현지 언론 보도 자료, KOTRA 호찌민 무역관)

8월 19일 이후 베트남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계속해서 1만 명 이상 나오고 있다. 베트남 수출 일번지인 호찌민시와 동나이, 빈즈엉 등의 산업단지에 베트남 정부는 8월 23일부터 전격적으로 군인 3,500명과 군 의료진 1,100명을 투입해 ‘준전시’에 맞먹는 초고강도 방역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삼성전자 TV·세탁기·냉장고의 가전 생산 공장과 나이키, 아디다스 등 의류·신발 생산 공장이 있다. 공장이 멈출 경우 전 세계 물량 공급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돼 큰 차질을 빚게 된다.

(자료 = 현지 언론 보도 자료, KOTRA 호찌민 무역관)<br>
(자료 = 현지 언론 보도 자료, KOTRA 호찌민 무역관)

미중 갈등으로 중국을 대신할 포스트 차이나로 베트남이 떠올랐다. 베트남 정부가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유치한 글로벌 생산 공장들이 베트남을 떠나 다른 대안국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정부 입장에서는 공장 폐쇄까지는 가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베트남 정부는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한 강력한 봉쇄와 격리 조치를 연장했고, 백신 외교와 기업들의 백신 기부를 통해 코로나19 확산을 9월 내 조기 종영을 계획하고 있다.

베트남의 백신 접종률은 8월 23일 기준 16%로 전 세계 33%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는 베트남 정부가 봉쇄와 격리를 통해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고 확신해 다른 나라처럼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은 것이 현 사태의 주된 원인이 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베트남 정부는 외교를 통해 또는 기업의 지원을 통해 빠르게 백신을 확보해 나가고 있으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봉쇄와 격리를 9월 내 끝낼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아워월드인데이터가 8월 23일 기준 말레이시아, 세계 평균,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비교한 그래프(자료 = 아워월드인데이터, 머니투데이)
아워월드인데이터가 8월 23일 기준 말레이시아, 세계 평균,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비교한 그래프(자료 = 아워월드인데이터, 머니투데이)

베트남 보건부(MoH)는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8월 24일 가진 웨비나에서 향후 2개월 이내에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완전 격리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 베트남 지인과 동료들도 베트남 정부의 노력에 긍정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베트남 팜 민 찐 총리도 9월 1일 의료·방역 전문가 70여 명과 가진 간담회에서 "베트남이 영원히 고립과 폐쇄에 기댄 방역 정책에 갇혀 살 순 없다"며 "이젠 완전한 통제가 어려운 상황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은 길고, 대유행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처음으로 '위드 코로나'를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칼럼을 써 내려가고 있는 필자 역시 지난 3월 한국에 들어왔다가 베트남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한국에 머물고 있다. 현재까지는 수화물 비행기만 뜨고 여객기는 운항되지 않고 있기에 한국에서 백신 접종을 마치고 안전하게 들어갈 예정이다.

다수의 한국 기업들은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베트남 시장에 대해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의 베트남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특히 베트남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이동 제한 조치로 비대면, 온라인 거래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현금 결제에서 모바일 결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는 점도 청신호다. 이런 흐름을 빠르게 읽어 국내 IT 기반의 플랫폼 또는 핀테크 기업들이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는 베트남에 진출해 좋은 기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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