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기 (사)외국인직접투자연구센터 정책분석실장 / 경제학 박사
민경기 (사)외국인직접투자연구센터 정책분석실장/경제학 박사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적기에 원자재를 공급받지 못해 신흥국의 공장 가동도 원활하지 못하다. 팬데믹 이후 물류망도 항만 적체 현상이 심각하다. 당연히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공급은 역부족이다. 자연스럽게 상품 가격, 즉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선진국의 경기 회복 속도가 둔화하고, 이는 다시 신흥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지속·가중되는 상황이다. 2021년 4분기 글로벌 경제의 최대 리스크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 원자재·에너지 가격 급등 현황과 요인, 그로 인한 영향 등을 살펴본다.

▶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 심화 요인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 심화의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있다. 팬데믹에 의한 국경 통제, 공장 폐쇄 등을 반복하며 전통적 공급망에 피로가 누적된 상황이다.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의 경우 2020년 3월, 10월에 이어 2021년 1월 등 최소 3차례 이상 국경을 폐쇄했다. 국경 통제는 주요 운송 경로의 항구 혼잡과 배송 지연, 운임 급등 현상을 초래했다.

변이 바이러스 확산 방지 명목으로 부두를 폐쇄하고, 선원들의 상륙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로 항만과 터미널에 적체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컨테이너·선박 부족 사태로 확대됐다. 지난 2021년 1월 미국의 LA 롱비치 항만 근로자 700여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항만 물류 적체가 심각한 상황에 빠지는 사건이 있었다. 또한 8월에는 세계 최대 물동량을 처리하는 중국 닝보·저우산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메이산(梅山) 항구 구역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많은 나라가 해상 물류 핵심 인력인 선원의 상륙을 금지해 지난 7월에는 한때 10만여 명의 선원이 바다에 머무르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이에 국제해운회의소(ICS, International Chamber of Shipping) 등은 9월 UN에 보낸 서신을 통해 운송 노동자들이 국경 폐쇄, 귀가 불가, 의료 서비스 부족, 자가 격리 등의 총체적 불확실성 속에 노출됐으며, 한계에 이른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두 번째로는 2021년 세계 각 지역에서 발생한 자연재해와 사건·사고로 글로벌 공급망 지체 현상이 더욱 악화된 것을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미국, 중국, 독일 등의 나라에서 자연재해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며 공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2021년 1월 미국에서 발생한 기록적 한파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서 삼성전자와 NXP, 인피니언 등 차량용 반도체 전문 기업들의 가동 중단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상태가 더욱 악화했다. 7월에는 중국 허난성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침수와 철도 파손으로 내륙 운송에 차질을 입었으며, 같은 달 독일 등 서유럽에서도 100년 만의 폭우로 철도망이 붕괴했고, 화물 운송이 지연돼 자동차, 가전 업계 등이 피해를 보았다.

화재와 사이버 테러 등과 같은 사건·사고도 공급망 악화의 원인이 됐다. 2021년 3월 일본의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 르네사스의 이바라키현 공장 화재로 MCU(차량의 주행을 제어하는 반도체) 생산 라인 등에 피해가 발생했다. 르네사스의 공장 정상화까지 약 4~5개월이 소요됐으며, 이로 인해 가뜩이나 극심한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 7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 케이프타운 등 핵심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는 국영 항만운영사가 사이버 공격으로 ‘불가항력’ 사태 발생을 선언하기도 했다. 9월 들어 영국에서는 브렉시트와 코로나19 사태가 맞물리면서 약 10만 명의 화물 트럭 운전사가 부족해 천연가스 등 일부 생필품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

세 번째는 호주와의 석탄 갈등 및 중국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발생한 중국의 전력난이 이유가 됐다. 중국 다수 지역의 공장이 전력난으로 인해 가동을 중단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 심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9월 말경 31개 성(省) 중 주요 산업 단지가 위치한 광둥성 등 20개 지역에서 전력 공급 배급제를 시행했다. 이 여파로 랴오닝성의 애플과 테슬라의 핵심 부품 공장, 장쑤성의 포스코 스테인리스강 공장 가동이 한때 중단됐다.

중국 전력난의 주요 원인은 호주와의 갈등으로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한 이후 대체 수입원을 찾지 못한 상황에 있다. 중국은 연간 약 3억 톤 중 절반가량을 호주에서 수입해 왔으나, 2020년 10월 이후 호주와의 갈등 끝에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중국은 전력 생산의 56.6%를 석탄 등의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상황이나, 자국 내 석탄 생산량을 증대하기도 곤란한 형편이다. 지난해 9월 UN 총회 연설을 통해 206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을 공식 선언한 중국 정부의 저탄소 정책과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에 이어 인도까지 전력난이 제기되며, 전 세계 공급망 붕괴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10월 1일 기준으로 인도의 135개 화력발전소 중 석탄 재고량이 3일 미만인 곳이 절반 이상이다.

▶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 현황 및 요인

공급망 병목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원유, 천연가스, 구리 등의 원자재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원유 가격은 배럴당 80달러에 육박하며, 201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유럽에서는 천연가스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원유 가격이 최근 3년 내 최고치를 기록 중이라는 것이다. 2021년 국제 유가는 연초 대비 약 50% 상승하는 등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10월 7일 기준 서부텍사스산유(WTI)는 배럴당 78.30달러를 기록하는 등 최근 3년 내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2021년 10월의 원유 가격은 지난 1월의 52.1달러 대비 50.3% 상승했으며, 충격의 마이너스 사태를 기록했던 2020년 4월의 16.7달러와 대비해 무려 368.9% 상승한 수준이다. 이와 같은 고유가 고공 행진의 이유는 OPEC+의 증산 거부와 친환경 기조 속 전통적 원유 채굴 설비 투자를 주저하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둘째, 알루미늄 가격이 2008년 이후 최고치 기록 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9월 국제 알루미늄 가격은 2008년 이후 최고치인 톤당 2,957.25달러를 기록하며 2020년 5월 이후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알루미늄 가격은 2021년 10월 9일 기준 톤당 2,961달러로 지난 1월의 1,929달러 대비 53.5% 상승했으며, 2020년 4월의 1,421달러와 대비해 108.4% 상승한 수준이다.

알루미늄 가격 폭등의 원인 또한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공급에 차질이 발생해 빚어진 현상이다. 수요 급증의 원인으로는 알루미늄이 이차 전지 소재(분리막)로 활용되며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과 중국이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 에너지 집약 산업 투자를 늘리면서, 알루미늄 수입국으로 돌아선 점이 크게 작용했다. 또한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국인 러시아가 2021년 8월부터 알루미늄 수출에 관세를 부과한 점도 알루미늄 가격 인상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요 원자재·에너지 가격 추이 (자료 = 필자 정리)
주요 원자재·에너지 가격 추이 (자료 = 필자 정리)

셋째, 구리 가격이 5월 역대 최고치 경신 후 10월 현재 하락 중이라는 것이다. 경기 선행 지표로 사용되며 '닥터 쿠퍼(Dr. Copper)'로 불리는 세계 구리 가격은 2021년 5월 파운드당 4.6560달러로 최고치 경신 후 10월 9일 기준 파운드당 4.2840달러를 기록하며 지난 5월의 최고치 대비 8.0% 하락했다. 그러나 2021년 1월의 3.5650달러 대비 20.2%, 2020년 3월의 2.2605달러와 대비해 89.5% 상승한 수준으로 여전히 높은 가격선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구리 가격의 상승 원인은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으로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포함한 인프라 투자가 증가했고 이로 인해 구리 수요는 증가했지만, 구리 최대 공급국인 칠레가 국경 폐쇄, 항구와 광산 노조 파업 등으로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1년 초나 지난해 기준으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지속된 구리 가격 내림세는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 신호를 의미한다.

넷째, 철광석 가격이 5월 최근 10년 내 최고치를 기록 후 10월 현재 하락 중이다. 국제 철광석 가격은 2021년 5월 톤당 222.5달러로 최근 10년 내 최고치를 상회한 후 7월부터 하락해 4개월 만에 톤당 104.5달러까지 급락했다. 2021년 10월 9일 기준 116.0달러로 1월의 156달러 대비 25.6% 감소했다. 최고치를 기록했던 5월과 대비해 무려 49.1% 감소했으나 2020년 4월의 79달러 대비로는 46.8% 상승한 수준이다. 참고로 2021년 10월 기록 중인 철광석 가격도 최근 3년(2018~2020년)간 평균치 91.5달러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2021년 철광석 가격은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상반기 가격 급등은 코로나19로 억눌린 수요가 증가한 반면, 중국의 환경 이슈와 선진국의 생산 설비 가동이 정상화되지 못하면서 발생한 수급 불균형이 주요 요인이었다. 한편 하반기에도 중국의 철강 감산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철광석 수요 감소와 헝다그룹 위기로 인한 중국 건설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철광석 가격 급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 공급망 병목현상 가속화·인플레이션 피해 현실화 우려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과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은 먼저 제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다시 공급망 병목현상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 병목현상과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은 중국과 아시아 신흥국의 공장 가동률을 더욱 감소시키고, 이는 다시 공급 부족 현상의 심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 발생하는 공급망 병목현상과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흥국 공장 가동률 감소는 공급 부족을 심화시켜 공급망 병목현상과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또한 전 세계 상품과 원자재를 공급하는 아시아 등 신흥국의 경기 침체는 궁극적으로 선진국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신흥국의 공장 가동률 감소는 백신 접종 지연과 델타 변이 확산에 몸살을 겪고 있는 아시아 등 신흥국의 경제 회복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더불어 선진국 대비 더딘 회복세는 다시 공급망 병목현상 심화로 연결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인플레이션이 2022년까지 지속·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미국, 유럽, 영국, 일본의 중앙은행 총재들은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공급망 병목현상이 인플레이션 단기 해결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대응 차원에서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하겠지만,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으로 인한 경제 회복 둔화 우려 속에 정책 집행의 폭이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화정책은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 완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통화정책이 당장에 석탄 채굴량이나 반도체 생산량을 늘릴 수도 없고, 선박과 컨테이너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피해는 현실화하고, 글로벌 경제성장은 둔화되며, 물가만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 글로벌 공급망 복구의 열쇠는 ‘균형 회복’

WTO 출범 이후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백신을 독점한 선진국들은 소비가 회복되며 수요가 증가했지만, 이들 선진국에 상품을 공급하는 신흥국은 여전히 변이 바이러스로 봉쇄가 지속돼 공장이 폐쇄된 상태였다. 결국 원자재·에너지 가격은 급등하고, 공급망 병목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 봉하게 된 것이다.

공급망 병목·원자재 가격 상승 현상과 요인(자료 = 필자 정리)
공급망 병목·원자재 가격 상승 현상과 요인(자료 = 필자 정리)

주요 선진국들은 반도체, 의약품 등을 ‘국가안보 전략 품목’으로 지정하고 공급망의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품목이라 하더라도 기초 원자재부터 완제품까지 전 과정을 내재화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우리가 살아가며 소비하는 모든 품목을 단일 국가에서 자급자족할 수는 없다.

최근의 공급망 붕괴와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우려되는 등 불확실성이 다시 증가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우리는 선진국만의 안전과 호황이 있을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의 해결은 ‘선진국·신흥국의 균형 회복’에 있다. 감염병에서 회복되는 것이든, 경기회복이든 ‘균형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선진국 중심의 백신 독점이 먼저 해소되어야 한다. 선진국은 적어도 자국과 긴밀히 공급망이 연결된 신흥국에 백신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무역과 외국인직접투자(FDI)에 굳게 처져 있는 각종 규제의 빗장도 풀려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K글로벌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