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모토로 탄생한 싸이월드, 한 시대 풍미해
트위터, 페이스북 등 모바일 SNS 등장에 격차 좁아져
창업 멤버 떠난 싸이월드···본질 잃은 서비스에 이용자 불편사항 증가

대기업도 내‧외부의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처럼 아주 사소해 보이는 변화가 기업을 존폐의 문 앞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이제 막 비즈니스를 시작하거나 성장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은 내‧외부 환경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해도 피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스타트업 실패 노트’는 실패한 스타트업이 왜 실패했는지, 그들이 펼친 경영이나 전략은 무엇인지를 탐구해보며 한 번 틀린 문제 다시는 틀리지 않도록 만드는 ‘오답 노트’의 역할을 하려 한다.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이다. ‘실패’를 집중 분석해 실패를 정복해본다.

 

<스타트업 실패 노트> 시리즈

[K글로벌타임스] 2000년대 초·중반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싸이월드’를 모를 수 없다. 나아가 싸이월드로 친구들과 ‘일촌’을 맺으며 다이어리에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소통한 경험도 있을 터다. 싸이월드 속 아바타 및 공간을 다양하게 꾸밀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배경음악(BGM) 설정 등으로 사용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던 싸이월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싸이월드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모바일 SNS 등장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면서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후 ‘폐쇄’라는 극단적 선택도 할 뻔했지만 최근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마저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인내 끝 달콤한 과실 얻은 싸이월드

싸이월드 미니홈피 화면 [사진=아무튼, 싸이월드 (제철소 발행)]
싸이월드 미니홈피 화면 [사진=아무튼, 싸이월드 (제철소 발행)]

과거 싸이월드의 돌풍은 가히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1020세대에서 싸이월드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며 대다수가 싸이월드로 온라인 소통을 즐겼는데, 한때 사용자가 32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사실 싸이월드는 처음부터 흥행하지 않았다. 1999년 카이스트 학생들이 벤처 형태로 창업한 싸이월드는 당시 커뮤니티 기능을 앞세워 가입자 1000만 명을 보유하고 있던 프리챌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혹독한 사계절을 인내한 결과가 달콤한 과실이듯, 싸이월드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프리첼이 유료화를 선언한 것. 이에 무료로 서비스를 운영하던 싸이월드로 대거 사용자가 유입되면서 비로소 싸이월드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당시 싸이월드는 현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팔로우 역할을 하는 일촌 맺기는 물론이거니와 일촌 사이에서는 게시글 댓글 및 방명록을 달 수 있어 친목을 쌓아가는 커뮤니티 역할도 컸다. 요즘 MZ세대에서 유행하는 본디처럼 사용자의 아바타와 아바타가 거주하는 공간이 있었으며, 당연히 아바타 및 공간은 사용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게 꾸미기가 가능했다.

미니홈피의 BGM도 싸이월드 인기에 한몫했다. 때로는 싸이월드 BGM 순위가 그 시절 인기가수가 누구였는지를 알 수 있는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파도타기 기능으로 모르는 이의 미니홈피를 무작위로 방문할 수 있어 인연을 맺을 수도 있었다.

 

싸이월드, 패망의 길에 어쩌다 들어섰나

벤처 1세대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승승장구하던 싸이월드는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됐고, 이듬해 미국, 일본, 독일,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진출했다. 진출국만 무려 8개국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다시 국내 사업에 집중한 싸이월드는 2007년 시가총액이 1조 3000억 원을 넘었지만, 2011년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세계적인 SNS 서비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우리나라에 진출한 것이다. 또한 스마트폰이 대중들에게 보급화되기 시작했다.

모바일로 쉽게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자, 굳이 PC로 접속하고 로그인까지 해야 하는 싸이월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싸늘해져 갔다. 하지만 현실이 주는 안락함에 너무 길들어져버린 나머지, 싸이월드는 모바일 서비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국내에서만큼은 SNS 서비스로 영원히 자신들이 1위일 것이라는 안일함 때문이었다.

또한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면서 싸이월드 창업 멤버들이 제각각 갈 길을 찾아 보금자리를 떠났다. 이 역시 싸이월드가 실패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는데,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마이스페이스가 대기업에 인수된 날 환호성을 질렀다고 했다. 창업자가 떠나면 그 서비스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서비스의 본질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창업자, 그리고 창업 멤버들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만든 서비스에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다. 싸이월드는 매우 소중한 자산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시대의 아이콘’에서 ‘실패의 아이콘’으로

창업 멤버들이 사라진 싸이월드는 기존의 싸이월드가 보여주던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서비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페이퍼, 싸이마켓 등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싸이마켓은 입점 상인들과 일촌을 맺으면 유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도토리를 증정하는 서비스였는데, 이는 입점 상인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모두 공개하는 것과 똑같았다. 당연히 상인들은 이를 부담스러워했다.

사용자에게도 싸이월드 서비스는 점차 이용이 불편해져 갔다. 싸이월드 도메인 을 주소 입력창에 입력하면 강제로 네이트 홈페이지가 PC 화면에 떴다. 로그인도 네이트 메신저인 네이트온에서만 가능했고, 싸이월드가 해외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분리 운영을 한 탓에 외국인 지인과 일촌을 맺을 수 없었다.

2019년 싸이월드 접속 장애 화면. [사진=싸이월드]
2019년 싸이월드 접속 장애 화면. [사진=싸이월드]

여기에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싸이월드는 완전히 대중들에게 잊혔다. 바로 닷컴 도메인 연장을 하지 않은 것이다. 2019년 싸이월드에 접속 장애가 발생했는데, 이와 같은 이유로 사이트가 폐쇄되었다. 결국 2020년 6월 싸이월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싸이월드가 다시 서비스를 재개했지만, 반짝 인기에 그치고 말았다. [사진=싸이월드]
싸이월드가 다시 서비스를 재개했지만, 반짝 인기에 그치고 말았다. [사진=싸이월드]

물론 2021년 재기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미 SNS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3개 기업체제로 나뉜 뒤였다. 싸이월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국내에서의 큰 성공에 안일한 자세로 안주하고, 나아가 서비스 본질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싸이월드는 ‘시대의 아이콘’에서 ‘실패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러한 싸이월드가 경영진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K글로벌타임스 강초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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