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로  싱가포르 Wilt Venture Builder Pte. Ltd. 대표
원대로  싱가포르 Wilt Venture Builder Pte. Ltd. 대표

요즘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벤처 캐피탈 투자를 받고 한숨 돌린 신생 스타트업 김대표. 얼마 전 해외진출 업체를 뽑는 정부 프로그램에도 선정되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싱가포르에 도착, 후끈한 아열대 바람 속에 그 유명한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아, 이렇게 우리도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는구나.’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한국 스타트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싱가포르에 진출하는 스타트업들과 벤처 캐피탈들이 부쩍 늘고 있는 상황이다. 구글과 유튜브 검색, 각종 리포트 자료, 해외진출 세미나 등을 통해서는 바로 보이지 않는 사실들이 있다.

그러나 위 사례에 나온 김대표와 같이 싱가포르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필자가 알고 있는 핵심 정보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1. 싱가포르와 동남아 시장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노려 볼만한 신규 시장인가.

동남아 주요 10개국 모임인 아세안의 전체 GDP 규모는 한국 GDP의 2배 수준밖에 안되고, 인도네시아 한 국가 비중이 1/3이나 된다. 싱가포르는 인구 5.7백만명에, GDP 규모는 한국의 20%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국기업들 투자가 가장 많다는 베트남은 인구수가 한국의 2배 수준이나, GDP는 아직 싱가포르 보다도 낮다. 

거꾸로 바라보면, GDP 세계 10위권에 인구 5천만명의 한국시장이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다. 이런 한국 시장이 어렵다고 동남아 진출을 고려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를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뭔가 잘 안돼서, 돌파구로서 또는 투자 받기 위한 명분으로서 싱가포르나 동남아에 진출한다면 필패. 

우리가 동남아 연합이라고 생각하는 아세안은 경제 협력을 위해 만든 지역 단체일 뿐, 유럽 연합 EU럼 단일 시장이 아니다. 즉, 동남아 각국은 서로 다른 통화, 법령, 사회 시스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한 동남아 진출이 아니라 구체적인 국가별 진출이어야 한다. 동남아 국가들 시장규모를 단순 합산하는 건 무의미하며, 각 국가별로 각개전투가 필요한 시장이다. 또한 미국, 중국과 같이 단기간에 큰 규모의 스케일업이 가능한 시장도 아니다.

Q2.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허브로서 동남아 시장의 모든 길은 싱가포르로 통한다고 하더라. 동남아 유니콘 상당수가 싱가포르에 있지 않나?

싱가포르의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Tech in Asia가 최근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동남아 유니콘 총 49개 중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곳은 27개로 반을 넘는다.

그러나 실제 싱가포르가 이들의 중심 시장은 아니다. 동남아 또는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되 법적 안정성, 세제 혜택, 투자 유치 편의성 등을 이유로 본사를 싱가포르에 둘 뿐이다. 

꼭 스타트업이 아니더라도 동남아에서 사업하는 상당수 기업들이 위와 같은 이유로 싱가포르에 법적 주소지를 두고 활동한다. 

다만, 싱가포르 정부가 중점 육성하려는 산업 (금융, IT, 바이오, ESG 등)의 경우 해당 인프라가 우수하고 정부 지원제도도 잘 마련되어 있어 유리한 면이 있다.

싱가포르 내수 시장은 작더라도 싱가포르를 테스트 베드 삼아 사전 검증을 충분히 한 후, 해외에서 본격 상용화하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즉, 싱가포르를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면, 우선 그 목적을 분명히 해야 쓸데없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Q3. 싱가포르는 국제적인 금융 허브라고 하니, 글로벌 자금 유치를 기대할 만하지 않나? 

싱가포르는 뉴욕, 런던, 홍콩 등과 더불어 글로벌 금융센터 상위권에 늘 올라 있으며, 조만간 홍콩을 완전히 제치고 아시아 유일의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을 듯하다. 특히 프라이빗 뱅킹이나 패밀리 오피스 자금은 최근 더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상당수의 벤처 캐피탈이 싱가포르에 본사나 펀드를 설립하고 있다. 인재 유치, 펀드 투자자 확보, 세제 혜택 등 유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투자 냉각기임에도 지난 2분기엔 싱가포르의 벤처 캐피탈 펀딩이 U$2.3b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그러나 거대한 싱가포르 금융 시장에서 벤처 캐피탈은 상대적으로 역사도 짧고 아직 비중도 미미하다. 동남아 각국 주요 벤처 캐피탈들이 본사나 지사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어도, 실제 주요 활동은 해당 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에 유입된 자금들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 돈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크므로, 리스크가 큰 대안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소재 벤처 캐피탈 펀드 대부분은 이 지역 스타트업에게만 투자하도록 약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잘 모르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이런 펀드들로부터 투자 유치를 기대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 동남아 펀드들은 동남아 외 지역에 투자할 이유도 없고 펀드 규약에도 어긋난다. 그나마 최근 들어 한국 정부 기관으로부터 출자 받은 일부 벤처 캐피탈 펀드가 한국 스타트업도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싱가포르 펀드나 기관은 이미 한국에 자체 오피스나 파트너를 가지고 있으니 한국에서 접촉해도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나 동남아 현지 벤처 캐피탈의 투자를 받기 원한다면, 한국 스타트업이 아닌 현지 스타트업을 만들어 현지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

Q4. 싱가포르는 몰라도 동남아 대부분 국가는 IT 인프라나 기술 수준이 많이 떨어질 테니,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가지고 가면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이다?

유선 광케이블망 건너 뛰고 바로 이동통신망과 와이파이로 인터넷이 대중화된 곳, TV 홈쇼핑을 경험하기도 전에 모바일 라이브 커머스가 성행하는 곳, PC 온라인 게임이 자리잡기도 전에 모바일 게임이 먼저 대중화된 곳,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가 깔리기 전에 모바일 결제가 먼저 일반화되고 있는 곳, 택시와 오토바이 보급이 끝나기도 전에 차량 공유 서비스 보급이 끝난 곳, 음식점 POS 설치가 대중화되기도 전에 키오스크와 모바일 주문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곳, 개인들이 HTS로 주식투자 입문하기도 전에 모바일로 해외주식은 물론 코인투자까지 시작하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어메이징 동남아.

한국은 90년대 중후반에서 2010년대 초에 걸쳐 유선 인터넷망과 2G, 3G 이동통신 기반의 다양한 IT 서비스가 등장하고 발전해왔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동남아는 그 기간을 건너뛰고 바로 모바일 기반 서비스 시대로 진입한 셈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과거에 경험하고 축적한 노하우와 기술들이 동남아에서 모두 다 유효할 수는 없다. 

동남아 스타트업들 중 상당수는 현지화와 고객경험이 중요한 B2C 업체들이다. 한국에서 성공한 B2C 모델이라도 동남아 현지에서 이들과 경쟁하려면, 경쟁우위가 확실히 있는 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즉,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이유가 범용적인 건 지, 한국 시장의 특성을 잘 살렸기 때문인 지부터 구별해야 한다. 미국의 ‘우버’조차 동남아 현지화에 실패하고 싱가포르 ‘그랩’에게 지분을 넘기고 떠났다.

그러면 B2B 소프트웨어 시장은 어떨까? 클라우드 보급에 발맞춰 한국인들이 개발한 경쟁력 있는 SaaS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시장만을 겨냥해 만든 B2B SaaS의 경우, 단순히 언어만 바꾼다고 해외 판매가 가능한 건 아니다. 

한국 B2B 시장은 언어 문제, 규제 문제, 담합 문제 등으로 해외 소프트웨어나 SaaS가 자유롭게 진출하기 어려워 글로벌 경쟁이 덜한 편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영어권이라 해외 소프트웨어와 SaaS들의 각축장이다. 한국에선 경쟁이 덜했을 지 몰라도, 싱가포르에선 전세계 제품들과 직접 경쟁도 해야 하고, 현지 영업 네트워크까지 구축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5.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 민관 지원기관들을 활용하면 현지 진출이 수월하지 않을까? 

현지 진출을 검토하는 해당 스타트업과 싱가포르 내 한국 지원기관들은, 지향하는 장기 비전은 비슷할 지 몰라도 단기 목표는 상이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내부적인 성과 지표가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업체들을 선정하고 지원한다.

그 기준과 해당 스타트업의 목표가 다를 경우, 선정이 안되거나 선정이 되기 위해 스타트업 스스로 목표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즉, 상호간에 ‘이해관계 일치’가 되는 지점을 찾아 현명하게 활용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특히 굳이 해외진출이 필요 없거나 시급하지 않음에도, 외부에서 비용지원을 받기 때문에 또는 대외 홍보에 유리할 것 같아 무턱대고 해외진출을 타진하는 경우도 왕왕 본다. 

자칫 해외진출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에 빠질까 걱정되는 부분이다. 전적으로 내 비용과 내 시간을 들어서라도 꼭 추진할 만한 해외 진출인 지 몇 번이고 검토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규모, 성장성, 경쟁 상황, 상대적 경쟁력, 현실적 접근성 등을 고려해 볼 때, 현재 한국 스타트업들에게 동남아만큼 매력적인 해외 시장도 없다.

다만, 동남아 진출이 꼭 필요한 상황인 지, 경쟁력이 있을 지, 현지 시장상황은 어떠한 지 등을 최대한 냉정하게 사전조사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현지 전문가 또는 전문 업체들과 적합한 현지 진출 전략을 수립하면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다음엔 해외 진출 방식을 ①단순 해외 수출, ②일반적인 해외 진출(자회사, JV 설립), ③해외 플립(본사 이전), ④해외 현지 창업으로 나누어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대로 싱가포르 Wilt Venture Builder Pte. Ltd. 대표는 벤처 투자 담당자, 창업자, 때론 멘토로  싱가포르 현장에서 16년째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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